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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

부제 : 앵그리정신, 20241206/금/살짝 흐림

by 정썰
#앵그리정신 #넘버3 #송강호 #조필 #전두환

“생활비 얼마 남았나? [14만 원쯤 남았습니다. 저희가 막노동이라도 뛰겠습니다, 형님]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불한당(不汗黨), 아니 불 땀 한…. (조직원들이 교주와도 같은 조필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수첩을 꺼낸다) 땀을 안 흘린다는 뜻이야. 조금만 더 버텨 보자, 조만간 일거리가 들어오겠지. 자, 결산하자.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헝그리정신에 관해서야,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헝그리 H U N…. 뭐, 니들 일주일째 짱깨, 컵라면만으로 이렇게 때우는 것 잘 알어. 물론 흰쌀밥에 고깃국 먹고 싶겠지. 그거 참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야, 훈련, 응. 니들 한국복싱이 왜 잘 나가다가 요즘 빌빌 대는지 아나? 다 이 헝그리정신이 없기 때문이야, 헝그리정신. 옛날엔 말야, 다 라면만 먹고도 진짜 라면만 먹구두,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 홍수환, ‘엄마 챔피언 먹었다’, 다 라면. 복싱뿐만이 아니야 응, 그거 누구야. 현정화, 현정화 걔두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버렸어. [임춘애입니다, 형님] 나가 있어! (수하 둘이 나가고, 임춘애를 말한 조직원만 이미 무슨 일이 닥칠 듯 안다는 듯 조필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따귀를 시작으로 발차기에 이어 집기를 때려 부순다. 수하 위로 옷장에서 꺼낸 이불들을 던진다. 방망이로 이불 위로 패다 던진다. 다시 매트리스 끝에 앉은 후) 들어와! 내 말, 응, 내 말 잘 들어! 내가 하늘 색깔, 하늘 색깔이 빨간색! 그러면 그때부터 무조건 빨간색이야! (황색란을 손에 들고) 요요요 이건 노리끼리한 색이지만 내가 이걸 빨간색 이러면, 이것도 빨간색이야! (달걀을 이불 쪽으로 던지며) 어, 십새끼야.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내 말 토도토도 토토토 토다는 새끼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직사’시켜 버리겠어, ‘직사’. 암튼! 아아, 음, 그, 그 (할 말을 잊은 분을 못 이겨 이불속 부하를 다시 차며) 십새끼야.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십새끼야! [헝그리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헝그리정신. 이 헝그리정신이 우리 건달에겐 필요해. 어, 니들 조만간 정말 잘 나갈 거야! 정말 벤츠 타고, 벤츠 타구. 룸싸롱, 룸싸롱? 룸싸롱, 안방 드나들 듯, 안방 드나들 듯 드나들 거야, 정말이야! 응, 그때두, 지금 이 짜, 짱깨 먹던 시절! 커 컵라면 먹던 시절! 우리 산에서 뱀 잡아먹고 깨구리 잡아먹구 그런 시절! 절대 잊어선, 절대 잊어선 안 돼. 어, 절대 잊어선 안 돼! 아, 으, 모든 걸 정말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 돼. 내가 늘 강조하지만, 잠자는 개한테는 결코 햇빛은 비추지 않아! 햇빛!!”


1997년 개봉된 화제작 ‘넘버 3’(감독 송능한)에서 송강호가 분한 ‘불사파’(조직원 셋) 보스 조필의 명대사.

한 호흡으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 생생하고, 어느 하나 버릴 단락이 없다.

송강호 배우 얼굴 대신 자꾸 그분, 아니 그놈의 면상이 오버랩된다.

내 맘 속에 저장된, 그저 조폭 중간 보스나 하면 딱이다라는 정치인 둘. 환이 열이. 참 닮았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서태주(한석규 분)가 타칭 '넘버 3' 였으니(자칭 넘버 2) 조필은 그보다 낮은 급이었을 거다. 열이가 그렇다. '넘버 3'는 못되고 그 위에 또 희가 있으니 '넘버 5' 쯤 되시겠다. 딱 그만큼인데 넘버원의 자리에 올랐으니 새드앤딩은 시작부터 예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찝찝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틈날 때마다 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불안한 애국시민들은 추운 밤을 광장에서 보낼지도 모른다. 앵그리정신으로 살아온 그가 제대로 된 '헝그리'를 체험하기를 바라본다. 격랑의 세월을 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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