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2/월/흐림
사단에서 부대 전반을 익히고 대대로 내려가서 작전과장 업무수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위로의 말이었다. 대대 작전과장 가야 할 커리어패스에 사단 교훈처로 발령을 받았으니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이탈자로 보였을 거다. 목소리가 따듯했다.
육군대학에서 전역지원을 했으나 거부? 당하고 발령을 받아 간 강원도 인제의 부대에서 처음 만난 박소령.
앳된 얼굴에 중령 진급을 한 정확히 말하면 중령(진) 계급인 그는 내가 3개월 후 전역할 거란 말에 태도가 바뀌었다. 3 사관학교 출신의 교훈참모는 그즈음 내가 본 장교중 가장 활기차 보였다. 진급도 빨랐고.
전역한다고 대충 일할 생각은 마라.
나도 그럴 생각이 없었고, 전역 전날까지 야근이었다. 시골 선술집에서 둘이 앉았다. 최후의 술자리.
고맙고 미안하다. 전역 예정자를 고생만 시켜서. 그날 정소령 얘기에 한숨도 못 잤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꼬박 새웠다.
지난번 술자리에서 왜 나가려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받았고, 난 '본질'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졌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가 장교의 본질을 잘 못 짚고 투신했고, 이어온 거 같습니다. 양파 까듯이 군인이라는 업을, 장교라는 직을 까네 보니 저랑 결이 맞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잘못 가고 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까지 할까 합니다.
내가 내린 군인의 원초적 본질은 적을 향해 총을 쏘는 자였고, 장교는 그 행위를 강제해야 하는 자였다. 내 머릿속에서 꿈처럼 펼쳐진 길은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고, 본질과 괴리된 상태로 이런저런 사건들을 감당하고 헤쳐나가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마지막 술잔을 앞에 두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난 군단장까지는 가야겠어. 그때 어쩌면 개마고원쯤에서 중국과의 결전을 치러야 할지도 몰라.
젊고, 유능하고, 직업정신 투철했던, 인간적이지만 업무에는 냉철했던, 그 박 중령을 우연히 뉴스 기사에서 만났다.
삼사관학교장으로 취임했다고, 어느덧 투스타가 되셨네. 많이 늙으셨네.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 헌신하며, 전장의 승리자가 될 사관생도를 육성하겠다". 음성지원 되듯 또렷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시절 참모는 이제 한 고비 정도 남았는데... 난 뚜렷한 목적지도 없는 거 같아서 잠시 우울할 뻔했지만, 극~뽁!
하루하루 내면의 힘을 길러가며 살아가 보자.
잘 될 거 같았던, 잘 되길 바랐던 군인이 잘 되는 경우를 만나서 기분 좋았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