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20250121/화/미세먼지 최악

by 정썰
#삶 #사람

현대 국어 ‘사람’의 옛말인 ‘사’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사’은 동사 ‘살-’에 접미사 ‘-’이 결합한 파생 명사이다. 16세기에는 제2음절의 모음 ‘ㆍ’가 ‘ㅏ’로 바뀐 ‘사람’ 형태가 등장하였는데, 16세기 이후로 제2음절 이하의 모음 ‘ㆍ’는 ‘ㅡ’로 바뀌는 경향이 있었지만, 간혹 ‘ㅏ’로 변하기도 하였다. ‘사’의 경우는 제2음절의 ‘ㆍ’가 ‘ㅏ’로 바뀌어 ‘사람’이 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사람. (이응에 아래아에 미음을 붙인 옛 표기법은 복사해 퍼 날라도 상자에 갇힌 물음표로 남았구나.)


부재중 보이스톡. 모레 새벽에 돌아올 예정으로 대만 여행 중인 아내. 무슨 일이지?

우리 죽을 뻔했어!

뭐? 왜?

전화기 너머 아들과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거봐 모르고 있잖아.

이내 아들이 전화기를 받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젯밤. 엄마는 잠이 들었고, 휴대폰을 보며 누워있는데 위층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뭐지? 하는 순간 다시 쿵!

무서워진 건 그날 숙소 맨 위층이라 위에서 소리 날 리가 없었다는 거. 조금 있으니까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내도 깨어 책상 밑으로 숨었다가 흔들림이 심해져 밖으로 대피했다고. 인근 지역에서 규모 6.5이 강진이 발생했다고.

내란획책에 이은 법원폭동으로 뉴스가 도배된 상황이니 남의 나라 소식이 닿지 않았다.

대만 남부 자이서 규모 6.4 강진…"가옥 붕괴 등 피해 발생"

한밤중 대만 덮진 6.4 강진... 건물 무너지고 TSMC 공장 가동 중단

검색해 보니 아찔하다. 아들이 더 어릴 적 두 모자는 네팔에서도 지진을 겪었다. 그 후로 아내의 네팔로 이민 가서 살고 싶다는 타령은 사라졌다.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공포를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아내의 태도 변화로 그 두려움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는 게, 살아가는 게 사람인데 비행기가 떨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상상초훨 미친놈들이 출몰하니 이래저래 힘든 삶.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조카 놀리는 재미에 빠진 삼촌이 어린 조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를 노려 불을 끄고 숨는 장난을 몇 번 반복했더니 그제야 삼촌의 짓인 줄 알아채고 “삼촌! 언제 사람 될래?”했다고. 숨은 쉬고 살지만 사람답게 산다는 건 사는 거 만큼 어려운 일.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지난 시절, 죽어도 되겠다는 무책임했던 자포자기를 반성하며, 사람답게 살기를 다짐하며 하루를 살았다. 살아야 한다. 사람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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