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1/금/맑음
[하ː늬원/하ː니원]이 바른 발음이다. 한의원.
출근 전에 진료받으려고 문 열자마자 들어섰다. 아홉 시 삼십일 분.
아내와 아들이 고객?이라 내 이름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약을 지어먹었던 거 같기도 하다. 암튼 구면이다. 아들 맥을 짚으시곤 산만하고, 잡생각이 많아 집중이 어렵다는 걸 바로 잡아내셔서 아내의 신임이 두터우신 원장님과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잘 지내셨냐는 인사에 아들 녀석은 덕분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너스레를 살짝 떨고 준비해 간 증상을 쏟아냈다.
피곤하고요, 손발, 특히 오른쪽 손발이 차고요, 종아리와 어깨도 아프고요.
하소연하듯 주절거리는 사이에 원장님은 맥을 짚고, 손을 만져본다.
원기부족입니다.
오른팔, 다리를 걷고 침상에 엎드려 누웠다.
침을 놓고, 전기가 흐르고, 부황을 떴다. 피가 흘렀고, 멍이 들었다. 보약도 20일 분. 그래 이건 투자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한다. 건강함을 기본값으로 잡으니 병원에 쓰는 돈이 낭비 같다.
아내의 진단대로 유전적 요인도 있다. 모시고 살던 외할아버지께서 한약방을 하셨고, 우리 집에서 하숙하던 사촌형이 한의사가 되었으니 돈 내고 진료받고, 약 사 먹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아는 게 병이다. 어설프게 아는 건 큰 병이다.
얼마 전 운동하는 동안 들었던 오래전 설교 내용이 떠올랐다. 개그맨 유재석에게 유느님, 유느님 하는데 정작 하느님(하나님)은 얼마나 찾고 사느냐는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내용이었다.
유재석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는 ‘유느님’, ‘국민 MC’, ‘메뚜기’ 등이다. 그중 유느님은 유재석과 하느님을 합친 말로 예능계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유재석의 위상을 실감하게 하는 별명이지만 정작 본인은 부담스러워 싫어한다고. 수많은 미담과 선행, 배려와 자기 관리는 탈인간급이지만 가장 인간다운 인물로 뽑히기도 했으니 아이러니다.
돈 없는 자에겐 돈이 하느님이요.
몸이 아픈 자에겐 약이 하느님이요.
목마른 자에겐 물이, 배고픈 자에겐 밥이 하느님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 홍수에 떠내려가며 기도를 하느라 잡을 수 있었던 스티로폼도 마다하고, 둥둥 떠서 지나가는 통나무도 지나쳐 보냈다. 결국 천국의 길목에서 하나님을 만나 원망했다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절 구하지 않으셨나요?
내가? 무슨 소리니? 내가 널 살리려고 스티로폼도 보내고, 통나무도보 냈잖아.
하나님께선 다양한 수단으로 경고하시고, 도와주신다.
피로를 통해 건강을 살피라 경고를 주셨고, 이번엔 한의원을 통해 낫게 하실 거 같다.
욱신거리는 오른 손목의 멍자국을 보며 몸이 좀 회복된 기분이다. 그래 오늘은 하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