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틴 블레이크 지음, 시공주니어
우리학교 도서관에서는 학년별로 교과관련도서를 뽑아 따로 비치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은 공공도서관과 달리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특수도서관에 가까운데, 가장 큰 목적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한글 ㄱㄴ부터 배우는 1학년 친구들을 위한 교과관련도서를 뽑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한글도 배우기 전인, 이제 하나 둘 세는 법을 배우는수학 교과과정의 관련도서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영국 작가 퀸틴 블레이크의 <앵무새 열마리> 그림책이다. 일단 이 책은 그림이 참 재미있다. 이 작가는 마틸다, 찰리와초콜릿공장 등으로 유명한 로알드 달의 작품 삽화를 도맡아 그렸던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그림이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많은 그림책들이 그렇듯이 이야기 전개로만 따진다면 간단한 내용이다. 뒤퐁 교수는 늘 하던대로 일어나서 씻고 이닦고 옷입고 넥타이 매고 안경 쓰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온실에 간 다음 팔을 활짝 벌려 "안녕, 나의 멋진 깃털 친구들!"이라고 말한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똑같은 말을 듣는 앵무새들은 마침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에 이른다. (참 웃긴다. 앵무새야말로 늘 사람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동물 아닌가. 그런데 매번 똑같은 말을 듣고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라니.) 그래서 온실을 탈출하고, 뒤퐁 교수는 앵무새를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 그림책의 묘미가 펼쳐진다. (사실 표지부터 펼쳐진다. 앞표지를 보면 제목은 앵무새 열마리인데, 실제 앵무새를 세어보면 아무리 봐도 아홉 마리이다. 한 마리는 책을 펼쳐보면 뒷표지쪽에 있다.) 교수는 여기저기 찾아다니지만 앵무새를 못 찾는데, 모든 곳에 앵무새가 숨어 있다. 첫번째 장소에는 한 마리, 두번째 장소에는 두 마리, 세 번째 장소에는 세 마리... 이렇게 열 군데에 열 마리의 앵무새가 숨어있는데, 교수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못 찾고 그림에서 급격히 초췌해져간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함께 앵무새를 찾다 보면 금방 열까지 숫자를 센다. 사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10까지의 숫자를 다 알고 들어온다. 한글도 거의 모두가 다 읽을 수 있는 채 학교에 들어온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한글 ㄱㄴ부터 가르치게 되어 있고, 수학도 1부터 10까지 가르치게 되어 있다. (북유럽의 어느 나라는 아이가 선행학습을 해오는게 법으로까지 금지되었다던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걸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어쨌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앵무새를 찾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센다.
사서교사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단독으로 가르칠 수는 없는 일, 내년에는 이 부분을 도서관에서 협력수업으로 담임선생님과 함께 진행하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본다. 담임선생님이 열까지 가르치고, 앵무새를 함께 센 후 종이접기로 앵무새를 만들 수도 있고, 이미 만들어서 서가 사이에 숨겨두고 아이들이 모둠별로 찾아오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평소 도서관을 이용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그 단서에 따라 열 마리를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서가탐험이나 뭔가를 찾는 수업을 하면 평소 멍때리기 선수인 친구들도 눈빛을 반짝거리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곤 한다. 아, 신나겠다. 이 수업안을 드릴 때 제발 선생님들이 함께 하자고 얘기해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