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이 물려받은 언어에 대하여
"말 좀 예쁘게 해 주면 안 되나?"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꽤나 많다. 회사에서든 모임에서든, 심지어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말이다. 오히려 가족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라 그럴까? 가족이라 편하게 얘기해도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유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 그렇게 나온다는 것은, 예쁘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가족은 유난히 그런 일이 잦았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핏대를 세우고, 괜히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다 감정 다툼으로 번졌다. 그 중심에는 늘 감정 섞인 말들이 있었다.
"내가 싫다고 했지?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
"그냥 먹으라고 했지. 자꾸 성질나게 할래?"
"꼭 그걸 지금 해야 해?"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그래서 형님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요?"
"네가 그렇지 뭐."
하나 같이 날이 서 있다. 대략 떠오른 말들만 써봤다.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큰 위기에 봉착한 가족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그만큼 예민한 시절이 자주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예쁘게 말하지 못한 가족들이 오히려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왜냐하면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머니는 날카로운 말들이 한바탕 오고 가면, 늘 반성하듯 말하셨다.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못 배워서 그래. 너희가 좀 이해해."
아픈 말이었다. 부모에게 배우지 못해 예쁘게 말할 수 없다니,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예쁘고 좋은 언어를 물려받지 못했다는 사실, 그 이상으로 슬픈 말이었다.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좋은 언어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바쁘게 살다 보니, 내 부모에게 받은 언어를 또 자식에게 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들도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자세하게 보면 서로의 언어속에 담긴 삶을 이해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어머니의 언어는 약 8년 전 암을 겪은 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온화해졌으며 너그러워졌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도 나이가 들수록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자주 다짐한다.
언어의 감수성
'예쁘게 말한다'는 건 언어의 습관과 관련이 깊다, 단순히 미사여구나 포장된 말들을 늘어놓는 게 아니다. 하나의 단어, 문장이라도 정성과 배려를 얼마나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한 단어로는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감수성은 어떤 대상에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성질을 뜻한다.
그럼, 언어의 감수성은 뭘까? 그건 상대의 언어에 얼마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를 토대로 다시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언어에 몰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때로 우린 논리적이고 틀린 것 하나 없는 말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맞는 말이라도, '언어의 감수성'이 빠지면 날카로운 화살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날 선 화살이 날아오는데 그걸 가만히 맞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피하거나 방어하려 들 것이다.
살면 살수록 더 크게 느낀다. 언어의 감수성을 가지고 예쁘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건 아닐 테니. 혹시 주변의 사람들이 자꾸 떠나간다면,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당신의 지갑이 아니라 언어다.
예쁘게 말하는 게 무엇인지 방법도 설명하고 싶지만, 그건 도저히 안되겠다. 예쁜 언어라는 게 어떤 형태로 존재할 리 없다. 언어라는 건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 누가 언제 어디서 왜 말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딱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예쁜 말이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예쁘게 말하는 방법은 아마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돌아서 후회가 밀려왔다면 그 언어에는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굳이 필요하다면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대화를 할 때, 우리의 언어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읽고 나면 예쁜 말을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https://blog.naver.com/rhkrwndgml/22141587308
매 순간 최선의 언어를 선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언어가 조금씩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