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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서 벗어나" 욕구에 충실하면, 더 행복해질까.

도시의 욕망을 넘어, 삶의 욕구를 향해

by 글로 나아가는 이

욕망에 가려진 도시


우리가 지쳐있다면 대부분은 지나친 욕망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기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끄는 거대한 힘 말이다. 욕망은 오랜 기간 쌓인 출처 없는 욕구들의 결합이다. 욕망은 욕구보다 크고 복잡하다. 출처를 모른다는 것. 욕망이 무서운 건 언제부터 내가 그걸 추구해왔는지조차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론, 나 자신보다 훨씬 커져서 삶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질병도 원인을 알아야 고칠 수 있듯, 욕망도 출처를 알아야, 떨쳐낼지 계속 가지고 갈지 선택할 수 있겠지만 결코 쉽지 않다.


챗GPT 생성 : 욕망의 도시


10년간 지내며 바라본 서울이라는 도시는 거대한 욕망이 견인하는 곳이다. 낮부터 밤까지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가 끊이지 않는다. 욕망을 가지도록 최적화된 시스템에 따라 흘러간다. 모두를 위한 광고판인 '스마트폰'과 그 확장판인 거대한 빌딩과 네온사인들까지. 그 속에서 우린 수많은 타자의 욕망을 학습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인 점은, 상품의 특징은 그렇게 친절히 24시간 설명해 주는 광고도, '왜 그걸 보고 듣고 학습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추천하는 욕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 욕망 후에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시가 만들어낸 거대한 욕망에 잠식당한 걸지도 모른다. 사소한 욕구보다 거대한 욕망이 앞서다 보니, 눈앞에 놓인 소중한 것들을 돌 볼 여유가 없다. 심지어는 자신의 건강과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경우도 생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인 건강한 음식과 충분한 휴식, 진솔한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게 된다. N포 세대라는 말도 거대한 욕망과 조촐한 현실의 괴리에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욕망보다 욕구에 집중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약간의 채소를 곁들인 식사(식욕) 좋아하는 책 몇 권(지식 욕구)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안전 욕구)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사회적 욕구)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몇 가지 요소를 떠올려도 각자가 원하는 수준은 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콩나물을 포함해 겨우 2~3개의 나물과 고추장이 포함된 비빔밥을 떠올리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달걀 고명과 고사리, 시금치, 당근, 치커리 등 10가지가 넘는 나물이 정갈하게 배치된 때깔 좋은 고급 비빔밥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무엇을 떠올리던 각자가 가진 욕망의 크기만큼의 담겨있을 테니.


요즘 나는 내가 거대한 욕망보다 사소한 욕구에 온전히 집중하기를 바란다. 쉽게 말하면, 삶이 더 단순해지길 바란다. 밥을 먹을 때는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맛을 느끼고,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침대에서는 하루간 있었던 근심은 모두 내려놓고 오직 호흡과 간만에 마주한 침묵에 집중한다. 그리고 대화 중에는 오직 그 사람과의 교감에 몰두한다. 이걸로 족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그래서 느끼는 건데, 몰입을 방해하는 스마트폰과 멀티태스킹은 결코 우리의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진정으로 건강해질 때는 수많은 광고판으로부터 떠나, 사소한 욕구에 몰입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개념이 가벼워지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잊혀진다. 신기하지 않은가? 욕망은 사소하고 단순한 욕구에 몰입했을 때 그 자취를 감춘다.


욕구에 몰입하기 위해 의식을 되살리자. 특별히 봐야 할 이유가 없을 때는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를 넣어두자. 책을 읽든, 명상을 하든 하나의 행위에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을 걸 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의식해야 한다. 적어도 단 10초라도 현실 세계와 나의 욕구를 바라볼 수 있게.




영적인 욕구를 말할 때


"어떤 의미에서 영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만족한다. 개인적 필요를 위해서는,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이 마냥 유순하고 수동적이라면 인류를 향상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었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가우르 고팔다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인생책' 中)



챗GPT 생성 : 영적인 사고 그리고 욕망의 도시


영적인 사고(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깊이 생각하는 행위)는 우리의 욕구와 감정을 인지하고 수용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수많은 성인이나 현자들은 왜 그렇게 명상을 강조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존재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욕구와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긴다. 그래서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없다. 스스로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영적인 욕구를 느끼고 실행할 여유 말이다. 아무래도 이 욕망의 도시가 영적인 욕구에서 자꾸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건, 보이는 것들로 사람들을 더 정신없이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이 원하고 있는 욕구는 무엇인가? 집과 차, 옷과 음식 말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결국 갈 때는 올 때와 같이 빈손으로 돌아갈 뿐일 텐데. 당신이 이곳에 남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이름, 아니면 당신의 영적인 욕구가 이뤄낸 보이지 않는 당신의 그 '무언가'일뿐일 텐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 욕망의 빌딩숲 속에 숨어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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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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