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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고?

총보다 무거운 말,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

by 글로 나아가는 이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 짙어지고 있다. 한층 더 깊어진 여름이 아침을 깨운다. 일요일 오전은 가장 여유로운 시간 중 하나다.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핸드폰은 저 멀리 던져둔다. 외부와의 소통을 없앤 채,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마음이 혼잡해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한 주간 머릿속을 스쳐간 수많은 자극(주로 온라인 콘텐츠에서 받은 자극들)과 말들을 흘려보낸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의 의미


얼마 전 아는 분들과 드라이브를 가는데 한 분이 물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속담의 진짜 의미가 뭔지 아세요?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던 말이지만 정확한 의미는 몰랐다. 느껴지기로는 '책을 읽지 않으면 그만큼 답답하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입이 거칠어진다"는 말이래요.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인격을 다듬지 않으면, 남을 험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속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중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에 갇혀 있던 중 남긴 옥중 유묵(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뤼순 감옥에서 남긴 글씨)이라고 전해진다. 감옥 안에서도 자신과 조국, 그리고 인격을 위해 독서와 사유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무장투쟁을 하는 군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또 답답했을까. 숱한 회유와 협박, 배신과 야유가 쏟아지는 매 순간마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머금고, 또 때론 정말 무겁게 꺼내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총을 꺼내 들었던 순간보다, '대한독립'이라는 그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입 속의 가시는 결국 내 속에서 나온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성경, 마태복음 7:1–2)"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성경, 잠언 10:19)"


생각해 보니, 입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순간은 늘 나를 돌아보지 않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였다. 나의 가벼움을 가리기 위해 숱한 말들로 그 모습을 덮으려 했다. 그리고 남을 비판할 때는 그 대상에 항상 나 자신이 빠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비판하는 그 모습이 나에게도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챗GPT 생성


평소에 누군가 타인에 대한 험담을 할 때는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 화살이 지나간 뒤에는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적막과 공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험담을 들은 모든 존재가 생명력을 잃었다. 대기와 자연까지도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책에는 어떤 방향으로든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우리는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받는 것을 반복하는 끝없는 사유의 연속이다. 수시로 입속에 돋는 가시를 계속해서 내 안으로 집어넣고, "나는 과연 어떤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 가시가 아프면 타인에게도 똑같이 아플 것이고,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타인에게도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험담을 늘어놓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조금 참아보면 어떨까 싶다. 가시가 올라오는 그 순간, 그 말을 먼저 자신에 한 번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 말이 얼마나 아플지, 그리고 혹시나 내 속에서 나오던 그 가시가 나를 찔러 언젠가 큰 영혼의 흉터로 남지는 않을지. 물론, 이 또한 나에게 하는 말이다.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보면, 유난히 어떤 판단 기준으로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거나, 프레임을 씌워 하나의 언어로 낙인찍어버리는 콘텐츠가 정말 많다. 재미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콘텐츠가 정작 그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통찰은 부족한 것 같다. 그런 모습이 생겨난 이유를 이해하고 고려하지 않고, 그저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대상이 받을 상처는 누가 책임질까. 누군가 만들어낸 언어가 줄 수 있는 파급력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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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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