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색을 칠해간다는 것
쏟아졌다가 그치지를 반복하는 호우의 날들, 뒤늦은 장마가 계속이다. 그런데 장마가 맡기는 할까. 내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비는 이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예측할 수 없는 국지성 집중 호우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종일 들려온다, 엄밀히 말하면 비가 일상을 위협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자연을 위협한 대가를 자연이 고스란히 다시 돌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다.
빗소리는 방안에 차분히 앉아 들으면 참 좋다. 추적이는 리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영감이 떠오른다. 그래서 비가 올 때 글을 쓰면 잘 써진다. 그 순간은, 여름의 감성이 고스란히 내 안에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하다. 창작에 있어 계절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흑백 같은 일상 말고, 수채화 같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 동생은 경기도에 위치한 조용한 도시 외곽에 작은 칵테일 바(BAR)를 차렸다. 어릴 적 가슴 아픈 가정사로 오랜 시간 외가 쪽 식구들과 만나지 못하다가,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서야 만나게 됐다.
동생은 어머니(필자에게는 이모)를 닮아 패션과 예술에 재능이 많았다. 그래서 유명한 연예기획사에서 모델도 하고 개인 방송도 했지만, 본인과는 맞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나치게 단조롭고, 때론 무자비했다. 편안함을 주는 단조로움이 아니라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그런 단조로움이다. 성공과 실패, 유명과 무명, 부와 가난, 아부 아니면 멸시 등 모든 걸 흑백으로 나누는 세상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수채화 같이 다양한 자신의 감수성이 곧 흑백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후 동생은 서울에 있는 한 바에서 바텐더 일을 배웠다. 평소에 술에 관심이 많았고 요리도 좋아했다.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세상을 펼쳐갈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본가가 있는 동네 근처에 바(바의 이름은 'ART')를 차렸다. 직접 공간을 철거하고 인테리어까지 다 하느라 오픈 준비만 두 달이나 걸렸다. 동생은 바를 그곳에 차린 이유가 어머니를 모신 납골당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도 있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건 지금 동생은, 어떤 주택이나 아파트 같은 곳이 아니라 바에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일대의 땅을 산 후 컨테이너를 부지로 옮겨 직접 방으로 꾸몄다고 한다.
매일 아침,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일어난 동생은 문을 열고 앞에 펼쳐진 녹지와 넓은 자연을 바라본다. 그렇게 숨을 내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가끔 밤에는 고라니나 너구리 같은 야생 동물이 집옆을 지나가기도 한다.
"수채화 같은 삶이 맞네."
"생각해 보니, 왜 세상이 원하는 방법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어."
지난번 봤던 때보다 동생의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타고난 감수성과 성향이 훼손되지 않게. 흑백 세상에 물들어버리지 않게 스스로 자유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와는 또 다른 삶이다. 서울에 와서 삶이 좀 흑백으로 물든 건 사실이다. "어떻게 먹고살까?" 아니면 "그냥 쉬고 싶다." 대다수의 날들을 두 생각 안에서 살다 보니, 다양한 도전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어릴 적 하고 싶었던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운전대를 잡고 돌아오는 길,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에 더해 내 머릿속에도 여러 생각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감성을 가지고 있고, 훗날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그리고 지금 사는 삶이 그런 삶인지도. 물론 현재의 삶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0년 뒤 내 삶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백으로 덮여가는 삶 속에서 또 어떤 색감을 더해갈 수 있을지. 흑백의 농도는 정말 짙은데 그 속에 나만의 색감을 더할 수 있을지도.
"당신의 삶은 어떤 색인가? 흑백인가. 수채화인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