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음표게임은 매달 마지막 주 기분 전환을 위해 유닛 모임을 진행한다. 이때는 매번 모이던 스터디룸을 떠나 각 조마다 기획한 대로 자유롭게 모임을 즐긴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방장을 맡은 나는, 모임장으로서의 독보적인 감성을 표출하기 위해 한강 모임을 기획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0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임 이름은 '한 여름밤의 담소' 얼마나 아름다운 작명인가? 혼자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모임을 시작하기 전까진 몰랐다. 이 기획은 완벽한 무리수였다는 걸...
모임 당일, 체감온도 40도의 역대급 폭염과 함께 열대야 그리고 소나기가 찾아왔다. 퇴근 후 돗자리와 포장한 음식들을 들고 가는데 내 셔츠는 이미 땀에 절어 있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게다가 더 큰 걱정은 이 기획을 믿고 한강 모임을 선택한 모임원들이었다.
"어떡하지?... 에이, 뭐 별일 있겠어?"
집합 장소에 도착하자, 하나둘 모임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 이동합시다!"
우린 일단 한강으로 향했다. 난 최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을 살피려 했다. 다행히 크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내가 지나치게 걱정했나? 싶었다. 그렇게 첫 번째 위기가 지나가는 듯했다.
약 15분을 걷자 당산 한강 공원이 나타났고 우린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았다. 주위엔 열대야를 때문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준비한 음식들을 먹으려 하는데 다들 더위에 지쳤는지 잘 먹지 못했다.
"어떡하지?"
엎친 데 덮친 격,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확실했다. 두 번째 위기였다. 서둘러 일어나 깔아 둔 음식들을 허겁지겁 챙겼다. 그리고 옆 쪽에 있는 양화대교 밑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모임은 나가리다.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네..."
그렇게 자리에 앉았는데, 뒤로 펼쳐진 한강의 풍경이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조명에 비친 교각과 네온사인들 그리고 다리 위를 지나는 전철까지.
전에 앉았던 자리보다 시야도 넓게 트였고 바람도 잘 통했다. 어쩌면 이렇게 된 게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내려놓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걸 하자"
자리를 옮긴 후 시침은 벌써 21시를(집합 시간 7시 30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우린 각자를 소개하고 진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들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한 차례 고생을 해서 다들 마음을 내려놓았나?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고마웠다. 한 번 정도는 짜증을 낼 만도 한데 힘든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맞춰주려는 마음이 모두에게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22.07.29 말음표게임 유닛모임에서
우린 한강에 비친 네온을 조명 삼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꿈과 이상, 그리고 이 모임에 왜 나왔는지 등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삶의 의미와 느끼는 불안,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 얘기했다. 대다수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보다, 지금의 자기 자신이 왜 살고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어떻게 살고 싶고, 바람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누고 싶어 했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아서, 변수가 많아서 더 잘 된 것 같아"
처음 비가 올 때는 억지로 비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바탕 비를 맞은 후에는 구태여 피하려 하지 않고 그냥 맞는다. 그렇게 비와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 젖었기에 피할 필요가 없다. 그때 비로소 우린 비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