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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pr 07. 2024

가혹한 힐링, 달리면 가벼워지는 것들

우리는 왜 러닝에 중독되는가?

늦은 밤, '달리다 보면 가벼워지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니 머리가 무겁다. 그렇다고 또 달리러 갈 순 없다(1시간 전 3km를 이미 달렸다). 하지만 확실히, 달리면 언제든 털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안정된다.



러닝은 가혹한 힐링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뇌에 찌끼가 가득한 느낌이 들 때 달리고 싶은 욕구는 마구 솟구친다. 골을 흔들고 원초적인 자극을 줘서라도 잡념을 쏟아내고 싶은 것이다.


가혹하다고  이유는 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러닝 욕구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쳤지만 나의 뇌는 계속 달리기를 원한다.


러닝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중거리 이상의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숨이 차고 종아리가 탱탱해지고 때론 척추가 무너질 것만 같은 고통이, 현실에서 느끼는 정신적 고통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마법. "뭐 그 정도까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아, 미래, 내일 할 일, 사랑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그렇다. 생각마저 사치가 돼 버리는 순간이 필요하다. 달리기가 그렇다.


마라톤 애호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달리는 순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달리면 가벼워진다. 몸무게는 두말할 것 없이 생각의 무게도 같이. 가벼우면 건강하게 더 오래 날 수 있다. 생각이 너무 무거우면 뇌가 유연하지 못해 일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지장이 생긴다. 그러니까 달린다.  가볍고 날씬한 자아를 위해.




지난 2월과 3월, 연이어 2개의 마라톤 대회(동계국제마라톤, 불패마라톤)에 참가했다. 한 번은 수면시간/컨디션 조절 실패로 5km 코스로 변경해 완주만 했고, 또 한 번은 10km에서 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둘 다 확실한 목표를 두고 준비한 대회가 아니었다.



마라톤은 확실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국은 스스로 완주해야 한다. 근래에는 러닝 인구가 늘면서 크루들이 생겨나고 함께 달리고 사교까지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분명 건강하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오랫동안 마라톤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홀로 달리기를 시작해  홀로 피니쉬라인을 끊어온 분들(나는 그런 사람을 '클래식 마라토너'라고 부르고 싶다)에게는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 또한 20대 초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혼자 달리기 시작했고 (누군가에게 러닝을 배운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혼자 달리는 것이 익숙하니까.


어찌 됐든 러닝이 많이 사랑받는다는 측면에선 모두 좋은 일이다. 다음 대회 때는 조금 스퍼트를 올려 한계를 뛰어넘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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