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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빌런

매일매일 짧은 글 - 3일 차

by Natasha Mar 20. 2025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오전,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두고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두 팀이 모여, 한 팀은 사업을 설명하고 또 다른 한 팀은 그 사업의 홍보 아이템을 제안하는 자리였죠. 얼마 전 조직개편이 있었는지라, 사업 담당자도, 해당 팀의 리더도 바뀐 상황이었어요. 어찌 보면 팀 간의 상견례와 같은 자리였달까요. 일부는 회의실에 모여, 또 일부는 각자의 자리 또는 개별 회의실에서 화상 모니터로 참여했죠.


한참을 회의하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모니터 속 그야말로 ‘떽떽’ 거리며 혼자 주야장천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앞머리에 말려있는 커다란 헤어롤이었어요. 여기까지 읽은 누군가는 ‘쯧쯧, 요즘 MZ들이란‘, ‘신입이라 아직 회의 예의를 모르나 봐요‘ 하겠지만, 그는 저희 팀 리더였어요.


전 제가 잘못 본 줄 알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죠. 저 헤어롤을 까먹은 걸까? 싶었지만, 회의에 앞서 “다 아는 사이인데 괜찮죠?”라고 말하며 시작했다니 이건 충격이었어요. 정말 굉장히 격식에 매몰되지 않은 열린 리더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가 매일 팀원들에게 지적하는 것이 ‘매너‘거든요. 보내는 메일마다 넘치는 오타나 매번 틀리는 숫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팀끼리의 회의에서 앞머리 롤이라니… 할 말을 잃었어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회의에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은, 상대 팀을 가르치려는 자세와 말투였죠. 언제나 ‘그런 건 아시죠?(아니 너 모를걸)‘라고 물으며, 문제의

핵심만 쏙쏙 피해 주변만 빙빙 도는 질문을 매우 공격적으로 하죠. 이 회의에서도 혼자 일장 연설을 했죠. 오죽하면 다른 팀에서 “왜 너네 팀 리더와 회의를 하면 기분이 나쁘죠? 우리 팀 리더를 너무 무시해요. 정말 매너(!)가 1도 없어요“라고 항의를 할까요. 그럼 ”제가 미안합니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닐 거고, 그냥 말투와 성향이세요“라고 사과하며 달래는 것은 저와 팀원들이죠.


그러니까 같이 일할수록 저 사람 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배움이 늘고 있어요. 전해주는 말은 매번 사실과 달라 신뢰도가 마이너스인 사람, 우리 팀 일도 문제가 생기면 남의 팀인양 유체이탈하며 팀원을 비난하는 리더,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기분과 믿음에 충실하며 남을 공격하는 삐뚤어진 모습까지 모두 가진 그가 되지 않겠다고 오늘도 다짐해요.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즘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 그런 사람과는 엮이지 말라고들 하던데, 안타깝게도 업무의 상하관계로 묶여있는지라 도망칠 탈출구 따위는 퇴사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니 퇴사하는 그날까지, 매일매일 짧은 글, 3일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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