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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Aug 04. 2024

성선설과 성악설, 당신은 어느쪽 인가요?

끝까지 성선설을 믿을 수 있기를!



무인매장의 장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데 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동안 가게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된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거나,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영업초반엔 너무도 신기했다. 마치 내가 둘인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진정한 '부업'의 매력에 지인들에게 무인매장을 강력추천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찾아도 단점이 없는 완벽한 경제활동이었다.


그러나, 무인매장을 향한 나의 콩깍지는 한여름밤 삼척에서 처참하게 벗겨졌다. 그 밤, 여행의 열기에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있었던 탓에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장면을 보고 말았다. 쉬지 않고 울리는 사람감지 알람에 CCTV어플을 켜자 중고생 아이들 여섯명이 좁은 매장에 들어와서 떡볶이를 먹고, 뛰어다니고 냉동고 위에 앉거나 누워있는 장면이 삼척까지 생생하게 전송됐다. 


하! 매장 오픈 두달만에 멀쩡하던 문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이유, 아이스크림이 냉동고에서 나와 다 녹아있던 사건, 쓰레기통에서 종종 발견되던 치킨무의 범인을 한번에 확정할 수 있었다. 가만 보고 있자니 심지어 한 녀석은 아이스크림을 계산하지 않고 먹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화면을 보여줬다. 으악, 이 녀석들을 좀 보라고! 결국 이 상황을 지켜볼 수 만은 없어 마이크를 켰다.    

 

 "안녕하세요! 매장 내에서 빵빠레를 드시고 계신 손님은 계산 여부 확인 부탁드립니다"     


지켜보는 걸 몰랐을 아이들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고, 빵빠레를 먹고 있던 녀석은 지금 은행점검시간이라서 이체가 안되니 다 먹고 할 생각이라고 했다. 약속대로 매장을 나서기 전 빵빠레 값을 계좌이체 했고 카메라를 향해 "저 그런사람 아니에요. 가져가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억울한 듯 말했다.     


작은 화면으로 그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 '없어지는 상품들은 모른척 하자' 마음먹었지만 관리 안되는 도둑맛집으로 소문날까 걱정이 됐고, 무엇보다 매일밤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되는 일은 막아야했기에 방송을 했던건데 뒤늦게 친구들 앞에서 아이가 부끄럽진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1시가 다 되어가는데 잠도 못자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도 처량했다. 생각은 생각을 더해서 '밥벌이 참 쉬운게 없네'까지 이르렀을때 그 친구들이 다시 와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녀석들은 전보다 더 거칠게 뛰어다니며 매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빵빠레를 먹었던 학생은 보란듯이 냉동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갔다. 악의적인 행동이 분명했다. 여행을 떠나 사랑하는 연인의 바닥을 목격한 사람처럼 그날 삼척에서 나는 무인매장의 단점을 선명히 알게되었고, 한 때 단점이 없다고 떠들고 다녔던 사랑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아, 정말!! 팔아치울까!!" 그러나 감정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집엔 이틀후에나 돌아가는데 그냥 두면 아이스크림이 다 녹고만다. 둘인 것 같다고 좋아했던 몸은 결국 하나뿐이었고, 그 몸이 삼척에 있으니 200km밖에서 벌어진 일이더라도 삼척에 있는 내가 해결해야했다.  


'제발 누구라도 들어왔으면....'


다행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좋은 쳥년이 들어왔다. 청년이 키오스크 앞에 서자마자 마이크를 켜서 냉동고를 닫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고마운 청년은 미세하게 열려있던 냉동고까지 모두 닫아주었다.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가져가라고 했더니 두 손을 내저었다. "그럼 과자 드실래요?" 뭐라도 드리고 싶어 자꾸 권해봤지만 그분은 자신이 계산한 아이스크림만 들고 매장을 나섰다. 나갈땐 정중하게 인사도 해주는게 아닌가. 사람 마음이, 아니 내 마음이 참 우스웠다. 반듯한 청년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무인매장을 정리하고 싶을정도로 차갑게 식었던 마음이 언제그랬냐는 듯 금세 데워졌다. 


    

생각해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아니었다. 오픈전 지인들은 '도난'에 대해 같은 얼굴을 하고 걱정해줬다. 무인매장이 사람들의 도덕성과 시민의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쌓아두고 있어도 그냥 가져가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무인매장은 애초에 존재 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탐내지 않는 우리나라, 이미 종류를 달리하는 수 많은 무인매장의 수가 곧 도덕성의 수치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나는 성선설을 믿기에 별다른 걱정없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무인으로 열 수 있었다.      


실제로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내 믿음엔 변함이 없었다. 의도적으로 상품을 가져가는 상황을 직접 보지 못했을뿐더러 매장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선했다.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바구니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지갑을 놓고간 사람이 있으면 안보이는 곳에 치우고 연락을 주기도 했다. 봉투값을 계산 못했다며 동전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놀랍게도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고, 약속이나 한 듯이 냉동고를 꼭꼭 닫아줬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성선설을 더 믿게 됐다. 매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속을 썩이는 손님도 있지만 내 집이 아닌데도 소중하게 여겨주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무사히 무인매장의 사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


문득,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람에게 시달려서 성악설을 소리높여 외치는 대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성선설을 믿고 사람들의 선량함과 시민의식에 감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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