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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ul 19. 2024

이름을 묻지 마세요



아이들 이름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부르기 좋고, 놀림거리가 되지 않으며 평범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특이한 이름보다는 뜻이 좋은 이름이었으면 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하기로 하고 이름을 정할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면 충분하지 싶었다. 어차피 가게의 성패는 입지가 결정한다. 무인아이스크림 특성상 이름을 기가 막히게 지었다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가게의 이름이 특별하다고 한번 올 손님이 두 번 올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이왕이면 기억에 남는 이름이 좋지 않겠냐며 무인 매장의 이름 짓기에 열을 올렸다.     



처음 무인 매장을 하기로 했을 때는 무인라면가게를 먼저 생각했었다. 라면과 어울리는 만두와 김밥, 떡볶이를 같이 팔고 마카롱 같은 디저트도 구성할 생각에 분식집 콘셉트로 이름 정하기에 나섰다. 며칠 고민하며 '분식놀이터, 미슐랭분식, 분식카트, 분식이친구라면' 같은 의견을 내보았지만 남편은 올드하다는 한마디로 내 자존심을 긁어놨다. '모범분식소나 샤네르분식'을 제안한 남편의 의견도 딱히 마음에 닿지 않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돌아가 과연 무인라면가게가 ‘적은 투자금으로 시작해 시간도 별로 들지 않는 부업’이 맞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 짧은 유통기한 관리가 쉽지 않아 보여 결국 무인라면가게를 엎고 손이 덜 가는 아이스크림가게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쯤 너무 많은 길을 돌아온 탓에 나는 이름 짓기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쉬지 않고 고민을 거듭해 마치 등단을 하고 돌아온 작가처럼 의기양양한 말투로 아이스크림가게 이름을 발표했다.      



 “시원바삭 아이스크림 어때? 정말 완벽하지?”

 “시원바삭?”

 “응 입에 잘 붙지. 시바.. 어때?”

 남편은 음흉하게 웃었다.     


 

하... 이 남자가? 우리 가게는 아파트 단지 안에 문을 열 예정이었다. 초중고가 바로 인접해 있진 않지만 아이들이 오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비속어가 연상되는 간판이라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크게 반대하며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해 보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며칠을 고민해도 이렇다 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분했다. 이러다간 불편한 간판을 내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눈이 떠졌다. 국문학 전공에 작가라는 타이틀로 일한 햇수가 꽤 되었는데, 공대생에 문자보단 숫자와 가까운 일을 하는 남편에게 네이밍을 뺏기다니. 아. 자존심 상해.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시원바삭은 우리가 파는 상품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데다 입체적이었고, 입에 잘 붙기까지 했다. 듬성듬성 일해온 나와 다르게 그가 18년 동안 한 조직에 몸담으며 쌓아 올린 시간은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못마땅한 마음을 지우진 못했지만 시간이 없었고, 대안은 더 없었기 때문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사업자 신고를 시원바삭 아이스크림으로 하고 말았다.


      

이름 정하기가 끝났지만 우리 앞엔 2차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간판 디자인과 로고를 위해서 '라우드소싱'에서 공모전을 개최했다. 짧은 기간 동안 ‘시원바삭아이스크림’에 대한 로고와 간판디자인이 50건 넘게 도착했다. 가장 좋았던 아이디어는 시원바삭을 시바견으로 승화해 나의 불편함을 해소한 디자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간판컬러가 옆집과 겹쳐 채택하지 못했다. 남편은 시와 바가 사람 얼굴로 캐릭터화된 디자인을 보며 감탄했다.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챈 디자인이라며 디자이너를 칭송했다. 차라리 시바견이면 모를까 시바를 전면에 내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깔끔한 파란색 바탕에 아이스크림 일러스트가 들어간 로고를 골랐다. 남편은 너무 평범하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뜻을 굽혀 이 디자인이 최종선택 되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입모양이 시옷과 비읍으로 광기를 머금고 은은하게 웃고 있는 걸 생각하면 나의 완전한 승리도 아니었다.     





간판을 걸고 두 달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일곱 살 된 아들이 다가와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엄마 우리 가게 시원바삭 아이스크림이잖아. 시원바삭이라고 해야 되는데 누나가 시바라고 불러. 그거 욕 아니야?" 천진한 아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아, 누굴 탓하나. 좀 더 고민하지 못한 내 탓이다. 어휘력의 한계, 부족한 창의력을 채워보려고 오늘도 활자를 들여다보지만 슬프게도 아이스크림가게 간판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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