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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ul 05. 2024

내향인도 사업합니다

오늘도 절찬영업 중

   

낯선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 게 당연한 나는 뼛속까지 내향인에 집순이, 친화력이라곤 없는 대문자 I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남편이 무인아이스크림집 사장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뭐어? 나는 초등학생 때도 장래희망칸에 그 흔한 슈퍼주인, 문방구사장 한번 안 썼던 어린이였다. 그런 내게 무인아이스크림집 사장이 되라니.     

그러나 사는 일은 좀처럼 계획과 다르고 밥벌이는 나를 꿈과 낭만으로부터 멀찍이 떼어놓곤 한다. 남편은 벌써 몇 년 전부터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퇴사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아이스크림집 사장으로 만들어 퇴사에 발판을 마련하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평소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알고 보면 비정규직에 일 년의 절반은 백수로 지냈던 터라 고민 끝에 직업란에 주부와 프리랜서 중 뭘 써야 할지 갈등하는 대신 '사업'으로 그 칸을 채우기로 했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월세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사업자신고를 거쳐 각종 인터넷사이트를 전전하면서 마침내 무인아이스크림집의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 차, 의외로 이 직업이 소심한 내향인 집순이에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단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아이스크림은 발주를 내면 일주일에 한 번씩 대리점에서 알아서 채워준다. 거래처와 회의도 만남도 없는 셈이다. 에어컨 온도조절, 조명, 키오스크 기계 등 가게에 있는 전자제품들은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앱으로 작동이 가능했다. 매장청소는 사람들의 방문이 뜸한 새벽시간을 활용하면 시간절약과 동시에 불가피한 만남을 피할 수 있다. 말한마디 하지 않고도 가게가 돌아가다니! 집순이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향인에 집순이도 피할 수 없이 고객과 마주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매주 수요일, 아이스크림이 12시 반쯤 들어오면 가게에 들러야 한다. 여름이라서 아이스크림이 배송되는 동안 혹시 녹아있는 건 아닌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아이스크림이 잘 얼어있더라도 가게에 도착하면 냉동고 바닥에 있던 아이스크림과 방금 들어온 아이스크림의 위치를 바꾸는 일을 시작한다.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어느 날 일 년 된 아이스크림이 냉동고에서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30분도 안 걸리지만 조금만 지체하면 손님이 들이닥치는 시간이 되고 만다. 


 나는 뜨거운 여름에 손이 얼어붙는지도 모르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가게에 손님이 들어올까 봐 두려워하는 사장, 그게 나다. 어쩌다 손님이 들어오면 얼른 냉동고를 닫고 뒷문으로 나가버린다. 손님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있어서 구경만 하러 온 손님이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된다. 외향인인 남편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천연덕스럽게 다가가서 말도 붙인다. 자기를 만난 건 행운이라면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사장이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도대체 왜!!). 내성적인 나는 혼자 매장을 점검하다가 사람이 들어와서 당황해 손님인척 한 적도 있다. 맞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내가 사장이라니. 이래도 되나 싶다.     


16개의 성격유형인 MBTI가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에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개인의 고유한 성격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면을 긍정적인 성격으로 여기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면을 고쳐야 할 성격으로 생각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학교에 다녔다. 줄곧 반장을 하고 전교회장까지 하던 동생을 부모님이 자랑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서 상대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고, 막내작가로 일할 땐 이런 성격 탓에 남들보다 더 많이 비상구 계단에서 울었다. 그러나 치열한 시간, 삶의 굴곡을 지나면서 남들이 평가하는 내 모습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장점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비록 고객들과의 만남을 꺼리는 소심한 집순이일지라도 예민하고 기민한 데서 나오는 나만의 강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CCTV만으로도 매장의 문제를 찾아냈고, 조용한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고객들에게 다가갔다. 먼저 의견을 듣기 위해서 소통함을 설치했다. 여기에 들어오는 불편사항, 입고 요구 상품 등을 빠르게 반영하고 결과를 공지했다. 아무도 없는 매장에서 여유 있게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도록 음악을 틀어두고 온도와 습도를 쾌적하게 맞추려고 노력했다. 유통기한에 예민했고, 얼굴은 몰라도 매주 비비빅 흑임자를 10개씩 사가는 사람과 엑설런트 콘을 매일 사가는 사람이 허탕 치지 않도록 입고에 신경 썼다. 비록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건네줄 순 없지만 매주 빵빠레 한 상자를 주는 이벤트를 열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고객들과 비대면 유대를 쌓아갔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의 이직도 없이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우리 아빠도, 공장을 세워 백 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일했던 내 절친의 아빠도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향인들이다. 그들은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을 아내 몫으로 미뤘고, 새로운 만남을 싫어하고 틈만 나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배우자를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열심히 살았고,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정직하게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별것도 없는 이 작은 구멍가게를 하면서 생각도 못한 일에 당황하게 될 때면 나는 이 두 사람을 떠올린다. 무슨 일이든 성향을 떠나 성실함과 책임감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게 됐다. 덕분에 아직은 어색한 옷, 적성에 맞지 않는 아이스크림집 사장으로 살지만 오늘도 문을 열고, 24시간 절찬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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