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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Jun 26. 2022

솔로몬왕의 양육권 판결

누가 키울 것인가?

어릴 적 '솔로몬의 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느날 이스라엘 왕국의 지혜로운 왕 솔로몬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다.

그 여인들은 포대기 속의 갓난아기를

서로 자신의 아이라 우겨댔다.


기원전,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두 여인 중 누가 아기의 진짜 엄마일까?

고민하던 솔로몬왕은 판결을 내린다.     


"칼로 아기를 반으로 잘라 두 여인이 나누어 가져라"     


그러자 한 여인은 판결에 따르겠다 하였고,

다른 한 여인은 아기를 잔인하게 죽일 수 없으니

자신과 다투던 여인에게 아기를 주겠다고 한다.

이제 누가 아기의 엄마인지 최종판결이 내려진다.    

 

"아기를 포기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다"     


솔로몬왕이 왜 '지혜의 왕'이라 불리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는 진짜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심정을 헤아려 후세에 길이 남을 판결을 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 판결을 할 때

그도 자식을 둔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가 있는 부부가 이혼을 결정하면

양육권 분쟁이 실과 바늘처럼 따라온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했을 때

내가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이라면,

당신은 참 운 좋고 행복한 사람이다.

늘 곁에서 아이가 성장하는 예쁜 모습을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을 수 있으니.


하지만 만약 내가 가진 조건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배우자에게 보내는 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낫겠다면,

그때는 내 마음이 찢어지든 죽을 것 같든 상관없이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나와 상대방의 경제적 능력은 물론,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

일하러 갈 동안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인지,

아이에게 더 유익한 집안 환경이 어느 쪽인지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 저울에 올려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 나는 고심 끝에 공동친권을 갖고 양육권을 아빠에게 넘겨주었다.

'공동양육권'이라는 제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볼 계획이었다. 

평일에 일하고 금요일마다 아이를 데려와

주말 동안 재우고 돌봤다.  


그 일주일 사이에도,

아이가 부쩍 자랐음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나는 내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점선처럼 끊어서 보게 된 것이다.    

 

어릴 때 들었던 '솔로몬의 판결'이 어떤 의미인지

엄마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부모는 아무리 괴로워도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한 선택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배우자보다 당신의 조건이 낫다면

아이를 키워야 하고,

당신의 조건이 좋은 양육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아이를 위해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양육권이 부모 중 어느 쪽에게 가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단할 것이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가 클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데는 생각보다 더 돈이 많이 들고

아이가 자랄수록 사교육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씁쓸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양육환경의 질을 결정한다.

돈이 있어야 치안이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아직 공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우리사회에서

돈을 들여야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전 배우자에게 양육권을 주고 

대신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라면

전 배우자가 아닌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금액을 반드시 보내야 한다.  


나는 주말에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공동육아'를 했는데, 

사실 '공동육아'에는 더 큰 비용이 투입된다.

부모 각자의 집에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몸 누일 공간만 있어도 지낼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

결혼가정에서는 1번으로 충당했을 비용이 공동양육가정에서는 2중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공동양육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공동양육가정의 아이는 이혼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한쪽 부모의 부재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같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아예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친한 친구와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 지금 엄마 집이야"

지금은 엄마 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더 어릴 때는 엄마가 다른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지금 엄마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곤란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 때는 내 아이가 이런 상황을 겪는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껴 마음이 힘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이란 것이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런 욕심을 부리자면 이혼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따르는 법이다.

이혼을 선택했다면, 당신이 전 배우자로부터 자유를 얻은 만큼

경제적 안정이나 양육환경에 있어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대신 최선을 다해 아이가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공동양육'의 장점을 하나 더 말하면, 양 부모가 서로 양육을 쉬는 시간을 갖기에 

자기를 충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덜 지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비할 데 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는커녕 자신의 마음도 돌보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공동양육은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동안 만큼은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양육권 분쟁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공동양육'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 양육권 다툼으로 고민 중인가?

'솔로몬의 양육권 판결'을

한번쯤 떠올려보면 좋겠다.

'지혜의 왕'이 우리에게 남겨준

양육권 분쟁 해결의 지혜니까.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과 아이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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