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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Jul 06. 2022

어른 가면

중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요즘 기말고사 준비에 열성이다.

첫 시험인 중간고사는 낭만적이라며

호기심 반으로 치르더니

며칠 앞으로 다가온 기말고사는 거의 한 달 전부터

주말도 헌납하며 열심이다.   

나는 저렇게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는데

우리 아이는 성실한 걸 보니

절반은 아빠를 닮긴 닮았나보다.


엄마인 나는 내심 기특하고

아이가 피곤해보여 안쓰럽기도 한데,

그럼에도 아이는 자주 자책한다.

"기말고사 망하면 어떡해?"

"오늘까지 역사 못 떼면 죽을 거야!"


무섭게 다짐을 하고 밤늦도록 공부하지만

목표치를 다 못 채우고 잠들곤 하는데

저도 졸리겠지만

나도 늦었으니 그만 잠자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공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어.

다 못했다고 죽긴 왜 죽어?

이번 시험이 마지막 시험도 아니잖아?

그냥 과정일 뿐이야.

공부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거지.

그러니까 밤새지마.

오늘 푹 자고 회복해야 내일 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


아이는 아빠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한다.

나는 내집에 혼자 있으며 아이와 통화를 한다.

시간이 종종 간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하라고 가져다주기도 한다.

현관문 밖에서 아이가 간식을 받아가

"엄마, 안녕"

인사를 하나는 다시 내집으로 돌아다.


이제 시험이 딱 이틀 남았는데,

밤 12시가 다 되어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채윤이가 전화와서

역사 어디까지 했냐고 자꾸 물어봐.

이번에 영어는 100점 맞을 것 같대.

난 영어 자신 없는데..."


수화기 너머로 내가 대답한다.

"채이가 불안한가보다.

친구랑 비교하면서 얼만큼 공부했나

가늠하고 싶은가보네.

기말고사 때문에 불안해서

자꾸 물어보는 거야.

다른 아이들 공부 신경 쓰지마.

자기 것만 계획대로 하면 돼."


아이 친구의 불안 뒤에

우리 아이의 불안 숨어있었다.

"못해도 괜찮다,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열심히 했으니 자랑스럽다" 

한참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는 다시 공부하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날,

나는 '훌륭한 엄마'라는 가면을 쓴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혼하지 않았거나 주양육자인 엄마들처

늘 곁에서 챙겨주는 것.

그리고 훌륭한 어른으로서 조언해 주는 것.

전자도, 후자도 나는 아직 이루지 못 했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그런 척' 하는 것이다.


늘 곁에 있는 사람인  매일 전화하고, 간식을 챙긴다.

비록 비좁고 얕은 인간이지만,

아이 앞에서는 '훌륭한 어른인 척' 해본다.

"못해도 괜찮다,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열심히 했으니 자랑스럽다"

열변을 토하며.

그 말들은 사실 나에게 해주어야 하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고 싶었던 말들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혼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언어를 이미 가슴속에 품고 있다.

그동안 내가 믿고 싶고, 듣고 싶었던 말들을

꽁꽁 묶어둔 보따리처럼 내 아이 앞에 풀어놓았듯이.

흔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줄 말이

무엇인지 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덜 훌륭할수록 '훌륭한 어른 가면'을 쓰고

훌륭한 부모 행세를 잘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셈이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이혼한 부모는 특히 가면을 써야할 때가 많다.

이 사회에서 '이혼'은 결혼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혼한 부모의 마음에는 알게모르게 실패감이 스며든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아이를 대하면

당신을 닮은 아이는 당신의 마음도 그대로 빼닮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가면을 써야하는 것이다.  

모범적이고 성공적이며 사회생활도 잘 하는데다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어른다운 어른,

'훌륭한 어른 가면'을 자꾸 쓰다보면

언젠가 진짜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가 '신'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말로 부모들이 아이 앞에서만은

'신인 척'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불안하고 연약하지만,

부모는 늘 아이보다 강해야 하기에.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신인 척 겉에 뒤집어쓴 '가면'의 이야기가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삶의 진실일지도.


"못해도 괜찮다, 끝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열심히 했으니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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