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키울 것인가?
"칼로 아기를 반으로 잘라 두 여인이 나누어 가져라"
"아기를 포기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다"
'공동양육권'이라는 제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볼 계획이었다.
양육권이 부모 중 어느 쪽에게 가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단할 것이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가 클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데는 생각보다 더 돈이 많이 들고
아이가 자랄수록 사교육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씁쓸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양육환경의 질을 결정한다.
돈이 있어야 치안이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아직 공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우리사회에서
돈을 들여야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전 배우자에게 양육권을 주고
대신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라면
전 배우자가 아닌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금액을 반드시 보내야 한다.
나는 주말에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공동육아'를 했는데,
사실 '공동육아'에는 더 큰 비용이 투입된다.
부모 각자의 집에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몸 누일 공간만 있어도 지낼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
결혼가정에서는 1번으로 충당했을 비용이 공동양육가정에서는 2중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공동양육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공동양육가정의 아이는 이혼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한쪽 부모의 부재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물론 부모가 같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아예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친한 친구와 통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 지금 엄마 집이야"
지금은 엄마 집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더 어릴 때는 엄마가 다른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지금 엄마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곤란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 때는 내 아이가 이런 상황을 겪는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껴 마음이 힘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이란 것이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런 욕심을 부리자면 이혼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따르는 법이다.
이혼을 선택했다면, 당신이 전 배우자로부터 자유를 얻은 만큼
경제적 안정이나 양육환경에 있어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대신 최선을 다해 아이가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공동양육'의 장점을 하나 더 말하면, 양 부모가 서로 양육을 쉬는 시간을 갖기에
자기를 충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덜 지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비할 데 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는커녕 자신의 마음도 돌보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공동양육은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동안 만큼은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양육권 분쟁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공동양육'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과 아이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