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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Jun 26. 2022

엄마의 망원경

멀리 있지만 함께 있어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길을 걷다가 아이가 뜬금없이 물었다.


"엄마,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 안 돼?"


물어보고 내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올 것이 온 기분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것.

보통의 아이라면 누구나 원할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우리 딸이 원하는 모든 것
다 해주고 싶은데, 그건 안 되겠어.
미안해...

서로 못 보는 시간이 있지만,
우리는 주말마다 꼭 만나잖아?
같이 사는 사람들도 바빠서 얼굴 못 볼 때가 많은데
우리는 늘 만나면 재밌게 놀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은
바쁜 가족들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내 아이가 부쩍 커서 

이렇게 묻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

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아이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왜 엄마는 우리집에 같이 안 살지?'하고.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망원경'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엄마를 못 볼 때도 
엄마는 망원경으로 다 보고 있어. 
밥 먹는 모습, 학교 가는 모습,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
엄마가 다 지켜보고 있어"



그해 어린이날에 선물로 망원경을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것이 망원경이라고.


비록 같이 있지 않지만, 

엄마는 '마음의 망원경'으로 

너의 모습을 다 보고 있으니까 

매일 너와 함께 하는 거라고.

네가 위험하면 언제라도 짠 하고 나타나서 

너를 지켜줄 거라고.

우리는 멀리 있지만 함께 있다고.

엄마를 못 보는 동안 

아이가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낄까 싶어

'엄마의 망원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때의 우리 아이는 정말 엄마가 망원경으로 

늘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상상의 망원경이 조금이라도 더 우리 아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후로 한동안 망원경은 우리의 대화 소재가 됐다.


"엄마, 나 지금 뭐하고 있게?
망원경으로 봐봐"

"으응..?
오늘은 렌즈가 좀 흐리네.
뭐하고 있었어?" 




아이를 키울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찾아온다.

정답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최선을 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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