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가을 Aug 26. 2022

아이를 못 볼 때 불안하다면

아이의 어린시절을 충분히 함께 보내지 못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며 일하느라 바빠서 그렇기도 하고, 형편에 따라 자신의 부모나 배우자의 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기도 한다. 이혼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왔으니 더 말해보자면, 이혼한 이들이야말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다. 보통 양육권 합의를 하면 한 쪽 부모가 아이를 전담해 양육하고 다른 쪽 부모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아이를 따로 면접하게 된다. 주양육자가 아닌 부모는 당연히 아이를 보기 힘들다. 그런데 주양육자인 부모 역시 낮에 일하고 밤에 아이를 돌봐야 하니 역시나 충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힘들다. 그래서 이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아이든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함께 있고 돌봄을 받고 싶어 할 텐데, 아이가 어릴 때 이혼하면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들을 겨우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아이가 만 1세를 갓 지났을 때 이혼을 결정했다. 나의 경제력과 양육환경...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보니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아이를 데려와 집에서 이틀 밤을 재우고 보내게 되었다. 앞서 양육권을 결정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며 말한 내용인데, 다시 말하지만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껌딱지 같던 어린 아이를 단 이틀 보고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이 아빠 사정 때문에 4주에 1번은 아이를 볼 수 없었는데 거의 2주간 아이를 못 보니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시간이 이렇게 훌쩍 흘렀는데도. 


너무 어려 말 못하는 아이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이를 보낼 때마다 아이가 목이 쉬어라 울었다. 아빠나 낮에 돌봐주는 분과 헤어질 때도 그랬을까. 아이를 못 보는 평일에 일을 하면서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거의 매일 슬프거나, 울었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낫겠다 싶어 여러모로 궁리해봤지만 서울에 연고 없고 가진 것 없는 20대 프리랜서였던 내가 아이를 데려오면 나 대신 아이가 힘들어질 것 같았다. 


이런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아이가 10대가 되었다. 시간이란 뒤 돌아보면 이리도 화살처럼 가는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물어봤다. "엄마가 없을 때는 어떻게 보냈어?" 아이는 만화도 보고 밥도 먹고 좀더 커서는 구몬선생님과 한글 공부도 하며 잘 지냈다고 한다. 특히 좀 자라서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쯤에는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도 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도 만나니 더 즐겁게 지낸 모양이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을 아이가 즐겁게 기억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사실 아이 아빠도, 돌봐준 사람들도 모두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저 당시의 내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니 tv에 나오는 유아 학대사건을 보며 내 아이가 저 상황에 처하면 어쩌나 더 불안해 하고, 아이가 마음 편히 지내고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불안하니 아이도 불안할까 염려하느라 나의 삶에도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아이를 매일 못 보는 상황에 있거나, 매일 보더라도 오랜 시간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경우라면, 아이가 어떻게 지낼까 걱정되고 불안할 때가 많을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언제나 불안이 동반된다. 이 일이 잘 되려나? 잘 안 풀리면 어쩌나? 조금은 불안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여행지를 선택하는 것도, 무언가를 구입하는 것도, 매일의 식사메뉴를 결정하는 것도, 결혼과 이혼도. 그러니 불안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고려해 아이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고 내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되, 어차피 아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고 내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게 어떨까? 평소에 열심히 나에게 집중하며 지내고 아이를 볼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더 자라면, 아이에게는 삶의 롤모델이 필요하게 된다. 거창한 롤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존경할 수 있고 본받고 싶어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날 때마다 아이의 건강이나 마음 상태를 잘 체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들을 근거 없이 문제삼고 불안해하기보다 나 대신 잘 돌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갖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엄마가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라면, 아이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해진다"는 말을 흔하게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은 이기적인 부모를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다. 물론 최선을 다해 아이를 위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야겠지만, 그 시간들이 엄마에게도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할 때 뿐만 아니라, 아이를 못 보는 시간에도 엄마는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아이들은 도화지나 스펀지 같은 존재다. 부모의 마음 상태는 아이에게 물감처럼 스며들고 흡수된다. 그러니 아이를 위해 행복해지자. 지금이라도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나 스스로에게도 소중하게 대해주자. 행복은 돈이나 인간관계 등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바로 행복이다. 

  



     

이전 16화 엄마의 망원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