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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 소방관 심바 씨 Oct 21. 2020

더 이상 유자차를 마시지 못한다

출간 에세이 <시골 소방관 심바씨 이야기> 中

삶과 죽음은 때론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리곤 한다. 죽음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그 슬픔이 무뎌 저 언젠가 보통날을 맞겠지만 우리에겐 슬픔을 소화시키는 소화기관은 없다. 다시 평범한 날을 맞을 뿐이지 그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슬픈 기억들을 모아 놓은 상자에 그 사람의 이름표를 달고 보관하고 있다.



소방관들에겐 그와 비슷한 병이 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르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충격적인 장면이나 감정, 공포 등 을 기억 상자에 모아 두고 틈틈이 꺼내보는 병이다. 가끔씩 사무실에 놀러 오시는 팀장님, 과장님들이 옛날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데 시간, 장소, 배경이 서로 스피드 게임을 하듯 척척 알아맞힌다. 그이야기가 때론 씁쓸하게 끝이 날 때도 있고 웃으며 커피잔을 탁 털고 나갈 때도 있다. 그리곤 다시 보통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 년도 안된 시간이지만 나도 소방관이라고 이 과정을 겪고 있다. 예전에 악어농장에서 매일 악어 시체를 치우고 구더기가 드글거리는 닭대가리(악어밥)를 맨 손으로 만지작거려서 인지 시각적인 충격에는 좀 무딘 것 같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갈리는 현장에서 들었던 감정과 생각이 가끔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 반장님 이후로 한동안 그랬다.




눈 앞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탱크차와 그 밑으로 불똥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쏘고 있는 수관을 누군가 뒤에서 보조를 해주고 있단 느낌을 받을 뿐 새까만 연기와 먼지로 인해 헬멧 유리를 닦는 나의 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발을 디딘 이상 후퇴는 없었다. 불길이 잡히면 그다음 타깃으로 옮기며 전진만 있을 뿐이었다. 관창 머리를 잡고 있는 나, 관창보조 그리고 나를 향해 엄호 주수를 하고 있는 두 명의 소방관들. 이렇게 4명은 서로 어디 소속인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터널 화재 속에서 만나 서로의 생명을 조금씩 책임져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불길과 싸우는 동안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쳤다. 뒤돌아보니 다른 소방관이 공기호흡기 아래쪽을 툭툭 치며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공기호흡기에 공기가 다 떨어져 비상벨이 깜빡인다고 교대하자는 신호였다.

들릴진 모르지만 "수고하십시오"를 크게 외치며 관창을 건네고 터널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은 터널 안보다 더 어수선했다. 호스를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소방관들, 앰뷸런스에 차례대로 실려가는 환자들, 저 멀리서 이런 우리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 우리들을 향해 컵라면 먹고 가라고 손짓하는 감사한 의용소방대원들, 이 모두가 거친 눈발을 맞으며 이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 틈에서 홀로 사복을 입고 머리 위로 소복이 눈이 쌓인 한 남자. 그를 지나 새로운 공기통으로 교체하고 난 또다시 불속으로 들어갔다.



"어제 3팀 그리고 야간에 2팀 고생 많았어. 불이 꺼졌다고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고. 오늘 또 3팀 주간이지? 이따가 현장 가서 사체 수습 마무리하고 화재조사팀이랑 경찰에 인계해야 하니까 한번 더 가서 고생하자고. 알겠지?"

구조대장님의 말에 다들 고개만 끄덕거렸다.  어제 교대도 못하고 밤새 자리를 지킨 대장님의 턱과 입가엔 새카만 샤프심들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우린 위아래로 방화복을 입고 또다시 화재현장으로 갔다. 밤새 이루어진 작업으로 현장은 조금 정리된 느낌이었다. 어젠 소방관들만 보였는데 오늘은 경찰들이 눈에 띄었다. 터널 안에는 50여 명의 경찰들이 아침 일찍부터 들어가 사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폴리스 라인 앞에 기자들은 경찰 소방 관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구조차가 도착하자 세련된 복장을 한 젊은 여기자가 나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상황이 어땠는지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그게요 어제는 저..."

“최반장! 뭐해? 가자.”

“아 예!”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상냥하고 또박또박한 서울 말투에 잠시 흔들렸다. 아닌가 내가 총각이라서 그런 건가.  공무원은 함부로 개인의 생각을 언론에 내비치면 안 된다.


장비를 챙기는 사이 한 남자가 팀장님께 말을 걸어왔다. 팀장님도 오랜만에 만났는지 안부를 물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깊은 슬픔이 보였다.

“어.. 그래 이야기는 들었고. 그래 한번 해봐.”

팀장님은 왠지 부담되는 부탁을 받은 듯 보였다.

“팀장님 뭔가요?”

“어 그게.. 예전에 같이 일했던 일했던 앤 데 애가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아. 지금 아마 어디 소방서에 있을걸. 작년인가 결혼했는데 애는 없고. 근데 와이프가 어제 저 터널 지나다가 소식이 끊겼나 봐. 글쎄 잘 안될 거 같긴 한데, 우리 팀 터널에 들어갈 때 같이 좀 들어가고 싶다고 위에 이야기를 해보겠다는데.”

기억이 났다. 어제 소방관들 사이에서 머리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던 그 남자. 그는 어제 사고 시점부터 지금까지 잠도 못 자고 자리를 지키며 불길을 쳐다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터널에 진입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명령에 우린 구조차 안에 다시 올라타 앉았다. 덤프트럭 높이의 구조차에선 먼 곳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한참을 사람 구경을 하다 저쪽에서 그 반장님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구조차 바로 앞에 주차된 빨간 승합차에 타더니 그 승합차가 좌우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5분이 넘도록 영문도 모른 채 흔들거리는 승합차의 옆문이 열리고 그는 다시 팀장님께로 걸어왔다. 구조차 운전석 옆에 선 그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몰골이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빨간 눈은 튀어나올 듯했고 소매로 닦은 콧물과 침의 흔적도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쓰러질 것만 같은 발걸음과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은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모두 표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는데?”

“그게요. 안된데요. 그래서 혹시라도 손가락 한마디라도 찾으면 꼭 좀.. 부탁드려요.. 그래야...”

간단한 말 한마디 조차 마무리 짓지 못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듯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를 두고 다시 들어간 터널에선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찾아주고 싶었지만 그 안엔 차갑게 식어진 재뿐이었다. 그날이 있고 한참 후 공무원 메일로 소방관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화재로 아내를 잃었고 고생한 직장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이란 말인가.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불속에 몸을 던졌던 사람인데, 정작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사람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 앞에 발만 동동 구르던 그 무력감은 어쩌란 말인가.  얼마나 가슴 졸이고 속이 꼬일 듯 아팠을까. 들어가지 못하는 그 불길 속에 아내가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처절한 울부짖음이 만들어낸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혔다. 그가 느끼는 감정도 전염되어 내 마음에 슬픔으로 각인되었다. 난 아직도 그날에 불길이 그리고 감정이 생생하다.



"장비 챙겨.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팀장님의 무겁고 허탈한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내려 구조차 옆문을 열고 장비를 챙겨 뒤를 따랐다. 어젠 세상을 파묻을 기세로 눈이 내리더니 이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도로 한쪽에선 현장 상황 브리핑을 위해 깨끗한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회의를 하고, 폴리스 라인엔 여전히 기자증을 목에 건 기자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퍼 나르고 있었다. 등에 과학수사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바쁘게 전화를 받으며 터널을 향해가는 경찰도 눈에 띄었다. 그 사람들을 지나 새카맣고 슬프게 식어진 터널 앞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과 눈물이 얼룩진 그곳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터널 가장 바깥에 충돌한 트럭은 유자청을 싣고 가던 트럭이었다. 사고로 트럭에서 쏟아진 유자청이 바닥에 수북했다.  사내의 가장 비참한 , 냉혹하고 비정한  터널엔 향긋한 유자향이 가득했다.   후로   이상 내가 좋아하는 유자차를 마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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