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에세이<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中
여기저기 깨져서 널브러진 차량들, 겁에 질린 사람들의 표정, 하늘의 절반을 새까맣게 메운 터널의 연기 그리고 이런 혼란에도 아랑곳없이 세상을 덮느라 여념이 없던 올겨울 첫 함박눈, 이런 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사매터널 사고의 첫 장면들이다. 남원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30중추돌 사고라는 유래가 없던 대형 사고였다.
남원소방서에 배치 받은 지 한 달이 갓 넘은 신입구조대원이었던 나에게 연쇄추돌사고는 너무나 거버운 출동 지령이었다. 사고지점으로 가는 구조차에서 오가는 무전소리로 단순한 터널내 교통사고는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도착한 현장에서 터널은 이미 화재 최성기를 맞아 거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하면 구조할 사람을 수색하고 구조하는 것이 구조대원의 임무이다. 선착대로 도착한 우리는 불길을 뚫고 들어가든 불을 끄면서 들어가든 해야 했다. 팀원의 절반은 반대차선 쪽 터널 중앙에 있는 비상구를 이용하여 진입을 시도했고 나와 동기는 화재를 끄면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급박한 상황에선 신입딱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불길이야 어떻든 용기를 갖는게 중요했다. 현장에 도착하는 타 지역 구조대와 펌프차의 소방관들도 수관을 들고 그 용기에 기대어 불을 향해 들어갔다. 수많은 소방관들이 사선에 서있었다. 질산탱크가 쓰러진 터널의 반대쪽 상황도 최악이긴 마찬가지였다. 불길이 없는 터널 한쪽 모퉁이에 빈 공기통들이 쌓여가고 수십대의 펌프차의 물도 다 떨어질 때 쯤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6시간동안 한번 쉬지 않고 공기통을 메고 있던 어깨가 그제서야 맘껏 아파왔다.
며칠이 지나서 소식을 들었다. 같은 팀 구조대원이 들쳐업고 나온 할아버지께서 끝내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터널 앞에서 아내를 잃은 한 사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터널은 많은 슬픔과 여운을 남기고 까맣게 식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했던 현장에 다녀와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보다는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관창을 들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터널에 들어갔을 때 사실 겁이 났다. 빨갛게 달아오른 저 탱크가 폭발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내 조카의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소방관은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동료들 역시 같은 선택을 하고 끝까지 관창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은퇴를 해서 가족의 품에서 맞을지 혹은 사고현장에서 맞을지 모르지만 난 내죽음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이제 두 달이 지나는 신입소방사인 나는 늘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하는 소방관이 되길 다짐한다.
(2월자 신문사 독자기고 원문: 글쓴이 최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