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에세이<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中
출간 에세이 <시골 소방관 심바씨 이야기> 中
굳은살 박인 손을 기억합니다
난 나름 손 관리를 하는 편이다. 딱히 네일 관리를 받는 건 아니지만 손 로션을 쓰고 손바닥에 되도록 굳은살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편이다. 사람들은 악수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과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난 대체로 험한 일을 하지만 그런 인상을 주기 싫다. 내 아버지의 손바닥처럼 솔직하기 싫다.
아버지의 손은 항상 거칠었다. 조그마한 체구로 뭘 그리도 열심히 사셨는지 손바닥이 마치 사포 같았다. 그의 인생은 더 거칠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겠지만 아버지는 어느 서당에 어린 일꾼으로 일을 하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재혼을 해버린 할머니 덕에 비빌 언덕조차 어린아이에겐 사치였다.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남의 집에 종노릇 하며 차가운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는 언젠가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지게에 나무를 너무 많이 얹어 버티지 못하고 굴러 떨어져 죽을 뻔했다던 이야기를 항상 해주셨다. 지게에 작은 몸이 깔려 이틀이 지나도록 빠져나오지 못하고 소리만 질러대다 누군가 그 소리를 듣고 꺼내 주었다는 이야기. 이젠 우리 집 전래동화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작은 방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잔상이 아직 사라지기도 전에 효자였던 아버지는 뒤늦게 만난 할머니를 내내 가슴을 치며 그리워하다 할머니의 곁으로 갔다. 그땐 나중에 천국에서 볼 거란 믿음에 많이 울지도 않았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꼭 천국에 갈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 염을 해주신 장의사 아저씨의 말을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다.
" 이분은 살아생전에 엄청 열심히 사셨던 분이네요~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염을 해봐서 사람 손만 만져봐도 다 알아요. 참 고생 많이 하셨네. 편히 쉬쇼."
그 말은 나에게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았다. 지금껏 많은 일을 해왔지만 나의 무기는 늘 성실과 열심이었다. 백 명이든 천명이든 그중에 최고는 될 수 없지만 가장 열심인 사람은 될 수 있다는 게 나의 철학이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날 볼 때 아버지 닮은 구석이 하나는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난 내 아버지가 세상에 남기고 간 흔적이니까.
난 가끔 사고 현장에서 그런 아버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저 멀리서 논으로 쓰러진 10톤짜리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귀가 찢어질 듯 경적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진 트럭의 뒷바퀴는 열심히 돌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운전석 쪽을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딱히 손을 쓸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환자는 한 명. 트럭이 전봇대를 들이받으며 운전석 쪽 천장이 심하게 찌그러져 사람이 있는지 조차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랜턴을 비추니 환자의 무릎이 살짝 보였다.
"유압장비 가져와!!"
구조차의 옆면에 실린 유압장비들을 모두 꺼내어 트럭 앞으로 가져갔다. 유압장비는 휘발유 모터에서 나오는 동력을 전달 장비의 압력으로 바꿔 차량을 자르거나 벌리는 장비이다. 무게가 무거워서 덩치 좋은 구조대원들도 보통 두 명이 달라붙어 작업을 한다.
찌그러진 천장을 먼저 벌려야 했다. 집게발처럼 생긴 유압스프레더를 찌그러진 틈에 몇 번이고 쿵쿵 치다가 틈에 박히면 스위치를 돌려 공간을 만들어냈다. 주변에 방해되는 것들은 제거를 하고 환자를 누르고 있는 천장을 조금씩 벌려 나갔다. 사람이 한 명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겨 구급대원을 안으로 들려 보냈다.
" 여보세요.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현재 의식과 반응이 없는 환자 한 명이 있습니다."
"구급대원 나오시고 최반장 네가 들어가!!"
팀장님의 명령에 옆문을 통해 운전석 뒤로 들어갔다. 환자는 의식이 없는 채 안전벨트에 매달려 있었다.
" 목! 목! 그거 주세요 목!"
막상 피 흘리고 있는 환자를 보니 매번 보는 경추보호대도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야! 침착해! 천천히 천천히. 오케이?!"
팀장님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작업을 시작했다. 밖에서 차체를 벌릴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내부에서 공간을 만들어야지만 환자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압램을 설치하기 위해 차량 내부에 있는 짐들을 하나둘씩 밖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운전석 뒤쪽에 어린아이의 가방이 같은 게 보였다. 짙은 무채색의 백팩 속엔 빈 플라스틱 통 같은 게 느껴졌다. 텅텅거리는 게 그 안에 빈 도시락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것일까. 가끔 부모님들은 아이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니까. 유압램을 설치하려면 받침점을 찾아야 했다. 쉽게 부서질 바닥면은 손으로 뜯어 제거를 했다. 가죽시트가 덮인 보조의자를 뜯으니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먹다가 남은 귤, 자일리톨 껌통, 온갖 에너지 드링크, 식기도구, 가족사진. 졸음과 싸우며 열심히 살아온 삶의 흔적이 주변에 가득했다.
" 팀장님! 다리는 차량에 안 끼인 것 같아요. 제가 한번 들어서 빼볼게요."
환자의 등 뒤로 가서 그를 온몸으로 껴안아 잡았다. 그때 피 묻은 울퉁불퉁한 그의 손을 보았다.
손바닥은 굳은살이 여기저기 붙었고 장갑을 낀 내 손만큼 두꺼웠다. 투박하고 거친 그의 손은 내 아버지의 손과 닮아있었다.
난 내 아버지의 손이 싫지만 날 쓰다듬던 아버지의 손길은 좋았다. 딱딱하고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날 보며 똑똑하다고 우리 집안에 만물박사가 나왔다며 머리를 쓰다듬을 때 더욱 그 손길이 좋았다. 나와 누나만큼은 에어컨 밑에서 찬바람 쐬며 일하는 공무원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리 똑똑한 편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자신의 바람을 넣어 주문을 걸었던 것 같다. 아마 자신의 손만큼은 아들이 닮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내 손이 딱딱해지는 게 싫다.
"형! 안전벨트 자를까?"
"어. 잘라!!"
안전벨트가 툭 끊어지며 그의 체중이 나의 몸에 온전히 실렸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굽은 허리를 펴 그를 운전석에서부터 빼내었다. 그의 몸을 붙들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지만 다행히 환자의 몸이 운전석에서 빠졌다. 뚫린 전면 유리창으로 노란 들것이 들어왔다. 안전하게 그가 들것에 올라갈 수 있도록 그의 허리 쪽을 받쳐 들었다. 그리곤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쪽에 모았다. 조심히 들것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와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내였다.
다음날 아침 구급 대원으로부터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너무 허탈했다. 아직 그의 온기가 내 몸에 남아있는데 잘 지내란 인사도 없이 떠난 그가 한편 야속하기도 했다. 작업하는 내내 조금만 참아달라는 내 말이 들리지 않았나 보다. 결국 난 그의 마지막 증인이 되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조차 모르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언젠가 그의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의 삶을 궁금해하는 날이 온다면 참 열심히 사셨던 분이라 말해주고 싶다. 어떤 손을 가졌는지도 알려주려 한다. 그날의 기억이 퇴색되지 않도록 글을 남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그리도 서둘러 가십니까.
이제 곧 겨울인데 추운 날도 몇 해 더 겪고
슬픈 날, 기쁜 날도 손으로 더 헤아려보고 가시지
뭐가 급해 먼 길을 그리 급히도 떠나십니까.
당신이 살았던 이곳의 삶은 어땠습니까?
도로 위에서 웃고 울고 떠들었던 그 삶은 만족하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당신이 살아온 삶은
유산이 되어 당신의 이름과 함께 기억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이젠 몸에도 안 좋은 에너지 드링크 그만 마셔요.
그동안 참 고생 많았습니다.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