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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 소방관 심바 씨 Oct 10. 2020

주공 아파트 아이들

출간 에세이<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中

추석을 앞두고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여보세요. 여긴 남원 소방서 구조대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데요. 상황이 어떤지 자세히 설명 좀 해주세요."


"친구 가요. 지금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말리고 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한 소녀가 답해왔다.


"XX아파트죠? 혹시 몇 층인가요?"


"여기 18층이요."


"저희 금방 도착하니까요. 친구한테 계속 말을 걸고 계세요."


구조차가 아파트까지 도착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계속 시뮬레이션을 했다. 다른 사건들은 여러 번 경험해봤지만 자살 관련된 출동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책과 유튜브를 통해 얻은 간접 경험치가 전부였다. 자살 출동이 완전 처음은 아니었다. 사실 몇 달 전에 남원 다리 위에서 자살 소동이 한번 있었는데 출동하는 차 안에서 남원 원주민 반장님의 한마디에 조였던 신발을 끈을 풀었던 기억이 있다.

"남원 사람이 아닌가 보네요. 거기 떨어져도 사람 안 죽어요. 물에 빠져도 발 닿아요 거기."

다리에 도착하고 몇 분 만에 경찰이 말로 설득을 하여 그를 데리고 경찰차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아마 반장님 하고 똑같은 말로 설득을 했을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경찰차와 소방펌프차 한 대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팀장님은 로프를 타기 위한 장비를 조끼에 걸고 나한테 로프 한 동을 가지고 따라오라고 했다. 구조차 옆문을 열고 선반에 준비된 50m 로프 한 동과 안전 보조장비를 하나 챙기고서 팀장님을 따라나섰다. 이 날따라 아파트가 더 높아 보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진입하려는 찰나 경찰 아저씨가 머리가 초록색인 아이를 데리고 1층 입구로 빠져나왔다.

아. 사건 종료. 한편으로 다행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난 오늘도 자살 출동 경험치 +0를 획득하며 심심한 마음이었다. 아니 천만다행이었다.

초록머리 아이가 내려오자 노랑머리 여자 아이가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초록머리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둘이 껴안고 우는 주위를 다른 노랑머리 아이들이 애워쌌다. 아파트 입구에선 사회복지센터라고 적힌 모닝 차 한 대가 부랴부랴 들어오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우리 구조대장님께서 경찰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야기를 듣고는 구조차에 올라타셨다.


"음.. 다른 것이 아니고, 애들이 19살인데 삶에 희망이 없데."


주공아파트라고 하면

주공아파트라고 하면 아이를 가진 어른들은 아이들 키우기 꺼려지는 환경이라고 생각을 한다. 얼마 전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여러 활동들을 하며 삶의 통찰이 있는 친구임에도 첫 대답은 "아이를 키우기엔 좀 망설여지지 않을까? 형."이었다. 현재 5살, 2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먼저였다. 매일 한 명의 아이는 꼭 그의 몸에 붙어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을 한다.

인터넷 기사로 주공아파트 관련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반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심심치 않게 꺼내는 주제가 "너희 집 몇 평이야?"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 대목이다. 서로 같이 공 차고 놀다가 잠시 쉬는 타이밍에 요구르트를 빨면서 친구 부모님의 재력을 조사하는 꼴이라니 말이다.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하려는 것일까 아님 검증을 하려는 것일까. 여기서 주공아파트에 사는 게 알려지면 '주공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의 생각이 순수하게 그들만의 생각일까? 혹시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 투영되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

"너 어디에 XX아파트 사는 누구 알지? 너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알겠지?" 

이 말은 아이들에게 하기 전에 꼭 필요한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공아파트에서 자랐던 나

난 내 어린 시절의 한 토막을 주공 임대아파트에서 보냈다. 큰방과 작은 방이 전부였지만 할머니를 포함해 5명의 식구가 지내기에 그리 작지 않았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아버지는 일어나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깨웠다. 아버지의 차가운 손길을 이불속에서 이리저리 피하다 지쳐 깨어나면 온 가족이 밥상에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을 깨작깨작 먹는 사이 아버지는 건설현장으로 출근을 하셨다. 나도 옷을 입고 신발 가방을 챙겨 누나와 함께 등교를 했다. 별 일이 없는 한 나는 우리 반에 항상 1등으로 도착을 했다.

나의 둘도 없는 친구들 철웅이와 현철이도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철웅이는 같은 반이었고 항상 성적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현철이는 옆반 3등, 나는 친구들과 살짝 갭을 두고 8등 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철웅이는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만 삶에 구김이 전혀 없는 씩씩한 아이였다. 철웅이의 집을 내방 드나들 듯 다녔고 식사 때가 되면 철웅이 어머니께선 볶음밥을 해주셨다. 그 볶음밥은 아직도 나의 인생 볶음밥으로 남아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세상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인근 연못에 가서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았고 겨울엔 아파트 사이 주차장에서 꼬리연과 방패연을 날렸다. 아이들 사이에 전설의 형이 한 명 있었는데 방패연 기술자였던 그 형의 실타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실타래의 실을 다 뽑으면 1km 족히 되었을만한 엄청난 크기의 실타래를 연에 묶어 날렸다. 전설의 형이 방패연을 날릴 때면 연이 하늘에 있다는 정도만 분간이 될 뿐 하늘에 점이  연인지 내 눈에 낀 먼지인지 알아낼 재간은 없었다. 실타래를 정신없이 풀고 감는 형의 액션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다 연줄이 끊어져 날아간 연은 흉흉한 소문으로 되돌아왔다. 겨울에 날아간 연을 다음 해 봄에 하늘에서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해 여름에도 가을에도 전설의 연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비행기보다 빠르게 지나갔다는 연을 본 친구의 친구가 있을 뿐 실제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27년이 지난 지금도 전설의 형이 날린 전설의 연은 주공 임대아파트를 맴돌며 아이들의 동심을 지키고 있겠지 싶다.


주공아파트 아이들

머리색이 알록달록한 아이의 입에서 희망이 없다 말을 하고 사회복지센터 선생님이 모닝을 끌고 오는 모습이 왜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구조차 안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말하고 거주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희망을 빼앗아간 건 세상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주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놓아둔다면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가치의 기준을 세우고 행복의 지표를 만들 것이다. 가능성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멍청한 행동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일 텐데 우리 어른들은 살아오면서 겪었던 실패와 실수를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친다. 스스로 실패하고 실수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겪어보지 않은 세상을 향해 희망이 없다 말하고 가능성의 끈을 끊어버린다.


머리색이 노란 아이를 보며 혀를 차지 말아야 한다.

머리색이 반항의 상징이 아닌 아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걸 어른들이 이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몸에 문신을 하는 게 평생 후회할 짓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생각을 몸이 옮기는 것이란 걸 알아줘야 한다. 몸이 의미 없는 낙서장이 되지 않도록 가이드만 해줘도 아이들은 본연의 색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공아파트에 산다고 덜 행복하지 않다. 행복의 크기는 아파트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아이들이 바란 건 조언이 아니라 존중과 이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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