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콤플렉스였던 운동에 도전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길 좋아하는 성격이다보니 운동 역시 시작은 즐거웠지만 과감하고 힘있게 해내진 못하는 편이다. 글쓰며 팔밖에 써보지 않았고 단축 마라톤 정도로 자족하며 살아왔던 게 별달리 운동신경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각종 생활체육 현장을 무슨 뷔페 음식
고르듯이 돌아다니던 타입이다.
수영, 탁구, 재즈댄스, 걸스힙합, 요가, 에어로빅, 줌바 etc.
만년 헬스 회원이었던 나는 어느날 갑자기 기구를 쓰는 운동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결정적 이유도 있었다.
며칠 전 본 집콕 콘서트의 이승환, 서태지 체력에
여느 때처럼 또 놀랐고, 이형택 선수가
윤종신이 연예인 중에서 테니스를 제일
잘 친다고 어느 프로에 나와서 얘기했던 까닭이다.
나의 영웅들은 그렇게 뒤에서 운동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메니에르라는 이상한 증세를 앓은 후
생긴 생존욕구도 크게 한몫했고
무엇보다 근육 운동을 하면 무대 배우들이나 무용수들의 자유롭거나 제약된 몸짓을 좀 더 이해하게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다. 너무 격하게 감격하며 본 공연에서 퍼포머는 몸 쓰는 게 괴로웠다거나 나는 심하게 거부감을 느낀 공연에서 퍼포머는 심히 자유로웠다거나 그들의 신체적 속박이나 해방이 감상자와 어긋나는 것을 여러차례 발견하며, 왠지 무대 위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더 잘. 그렇게 시작한 거창한 운동은, 다른 것들이 늘 그러하듯 의지와 별개로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저만치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 까치발을 한걸음 또 내딛은 것뿐.
오늘은 스쿼트를 배웠다. 요사이 누구나 혼자서도 홈트레이닝으로도 많이들 즐기는 운동.
중요한 건 무릎을 굽히고 하체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자세이다. 스쿼트를 할 때 내 경우엔 상체가 거의 45도로 숙여지고 아래로 내려갈 땐 엉덩이도 90도로 내리지 못한다. 무릎 아래 근육이 경직돼있고 짧아서 그렇다고 한다. 쪼그려 앉는 게 어렵고 만일 그렇게 앉아도 뒷발꿈치를 들게 된다.
나는 이 시점에서 태권도 하는 무용수와 떡볶이를 먹다가 아킬레스건의 길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다 놀란 기억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 듣는 얘기였다. 단 한 번도 내 아킬레스건의 길이에 대해 짐작도 해보지 못했다. 자신의 근육 길이를 감지한다는 점이 왜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늘 나는 스쿼트 자세를 교정 받았다. 일단 뒤꿈치가 뜨니 덤벨을 발 아래 놓고 내려간다.
햄스트링이 짧기 때문이란다. 이때 등쪽 힘도 없으므로 막대를 들고 만세 자세를 해서 기구에 의지해 평평한 자세를 만든다. 앞으로 기우는 것을 방지하고자, 벽에 붙인 짐볼에 기댄 채 내려간다. 그렇게 하면 자세가 그나마 잡혀 있다. 이때 골반은 뒤로 빠져 있어야 한다. 몇 개 안 했을 뿐인데 땀이 많이 나고 다리도 조금 땡긴다. 수영을 배울 때도 수영장에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 땀을 많이 흘릴 정도로 쉽게 지치는 타입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흐물흐물.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 또 실감했다. 스쿼트를 마친 후 허벅지 기구 운동을 시작했다. 무릎 안쪽 근육을 쓰는 운동인데 역시 버티는 게 어렵다. 한 번은 두 다리를 벌리는 기구와 한 번은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올리는 기구를 사용했다. 무릎 밑을 올리는 운동의 경우 배에 힘을 주고 상체를 살짝 웅크려야 한다. 배에 힘을 빼고 했을 때보다 힘을 줄 때 더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허리는 붙여서 반동 쓰지 않기. 뒤통수에 수건을 대고 일어났다 누웠다 반복했고, 윗몸일으키기의 경우 휴식 시간을 많이 두면 안 된다고 해서, 아주 잠깐 쉬고 반복했다. 50분 가량 하체 운동을 배우고 마쳤다.
혼자 운동을 할 땐 주로 헬스장에서 흐르는 음악을 거의 다 듣는 경우인데 배우는 입장이 되다 보니 무슨 음악이 흘렀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운동을 마친 뒤 떠오른 노래는 이하이의 <한숨>이었다. 아킬레스 건 무용수와 떡볶이를 먹은 날 들은 노래였던 까닭이다. 그날 난 대학로에 무용 공연을 보러 갔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어느 인디 가수가 버스킹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노래와 목소리에 반했다.
공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가까이 가서 혼자 보기는 조금 민망하여 멀리서 보다가 음료라도 선물로 주고 싶어 그 앞 편의점에 가 음료수 두 병을 사갖고 나왔다. 한 병은 내가 좀 마시다 말았고 한 병을 버스킹 가수에게 주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지인인 무용수와 기획자, 영상제작감독을 만났고 우리는 공연을 본 뒤 근처 봉주르 떡볶이집 무한라면리필 가게에 가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그때 공연 전 극장 바깥 버스킹 노래가 좋았다고 하니, 이하이 한숨이라고 했다. 그렇게 알게 된 곡. 한숨. 그 노래를 만든 이도 즐겨듣던 라디오 디제이였고 지금은 떠났으나 라디오에서 삶에 대한 관점을 진지하게 들려주던 모습이 인상적인 가수였다. 애처롭고 애상적인 곡. 그렇게 이하이 한숨 카피곡 버스킹에 감탄했던 날, 나는 뒤늦게, 버스커에게 준 음료가 내가 먹던 음료이고 내가 들고 온 음료가 새 것임을 알게 됐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이후 즐겨듣는 노래 한숨.
운동을 배우기 시작하고 콤플렉스(운동)에 도전하며,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심지어 운동쌤이 가수 누구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밴드나 발라드 가수는 다 좋아합니다,라는 두루뭉수리한 대답을 했다. 운동쌤은 목소리가 슬픈 백지영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헬스장을 나오며 이하이 한숨이 떠올랐다.
그리고 저편 유리창 안,
헬스장 GX 수업에서 스키 자세로 회원들에게 하체 근육 운동을 시키고 있는 쌤의 형체가 내가 본 대학로 어느 배우로 느껴져, 카운터에 오늘 수업 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문의했다. 직원들은 영어명을 알려주었다. 요새 쌤들 성함은 거의 리옹, 리암, 리에... 이런 스타일이라, 본명은 개인정보인듯 하여 더 묻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