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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행배틀

인생의 기본값은 '행복'이 아니었다

by 김글리

삶은 메란당


'메란당'이란 말 아는지?

‘형편없다, 엉망이다, 난장판이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메란없다”도 같은 의미다)


내가 사기당한 일을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듣고보니 모두 사는 게 형편없었다. 한마디로 메란당이었다. 부모님 간병으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도 있고, 사춘기 자녀와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 결혼마저 실패로 끝나 법정다툼을 하는 이도 있었고,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본 이도 있었다. 나는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왜 이래 사는 게 메란당이노!”


누구나 삶이 메란당이라는 걸, 내 삶이 엉망이 되고야 깨달았다.



삶은 원래 엉망진창이야


20대때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부처의 말을 듣고 비웃었다. 삶은 축제인데, 이 양반 너무 비관적이시네. 그런데 살수록 부처의 말이 옳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삶은 원래 엉망진창이다.

고통은 뗄 수 없는 것이고, 고통을 없애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을 만든다."


삶은 공정하며,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이 생각이 오히려 병을 만든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도전, 역경, 불편, 실패를 맛볼 때 큰 배신감을 느낀다. 나아가 고통을 부정하게 된다. 내가 딱 그랬다. 나는 인생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인간은 선하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고 나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자, 너무나 큰 배신감이 올라왔다.


'인생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리 없어. 인간이라면 그렇게 악할 수 없어.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고!'


고통을 부정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많은 정신 질환이 필요한 고통을 거부한 결과라는 말이 있다. 삶은 꽃길도 아니고, 카펫이 깔린 영광스러운 길도 아니다. 이를 부인할 때 우리는 삶을 지옥으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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