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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있다고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다

알고보면 누구나 힘들다

by 김글리

누구나 내 불행이 가장 크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만났을 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장 도움이 된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만큼, 나보다 다 큰 고통을 겪고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됐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울면서 세상이 얼마나 많은 슬픔과 시련으로 가득한지 알게 되면, 나의 이 고통도 견딜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다.


나는 남의 고통에 무심한 편이었다. 그런데 사기를 당하고 많은 사건 사고 자료를 찾아보며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지 알게 됐다. 누군가는 인신매매를 당하고, 누군가는 배신을 겪고, 누군가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고, 누군가는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누군가는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고, 화상으로 온 피부가 벗겨지기도 한다. 인생이 불행배틀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가 누가 더 불행한 듯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수피즘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남자가 매일 밤 신에게 기도했다. 자신의 불행이 너무 크니, 다른 사람의 삶과 바꿀 기회를 달라는 기도였다. 계속되는 요청에 신은 기회를 주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 “각자가 겪은 불행을 보자기에 싸서 사원 마당으로 가지고 오라.” 남자는 기뻐하며 자신의 불행 보따리를 들고 달려갔다. 그런데 누구도 자신보다 작은 보따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좋은 옷을 입은 자도, 늘 웃던 자도 모두 그의 것보다 더 컸다. 남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신이 말했다.


“보자기를 모두 펼쳐놓고, 내용물을 살핀 뒤 각자 원하는 보자기를 선택하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불행을 보자, 모두 자기 보따리로 달려갔다. 남자 역시 누가 자기 보따리를 가져갈까 얼른 자신의 것을 잡았다.익숙한 불행이 타인의 불행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날 이후 불평을 멈췄다.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52, 53쪽 참고)



알고보면 누구나 힘들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 그동안 운 좋게 큰 고통을 피했을 뿐,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둘째,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거.


엄청난 고통이 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고서야 나만 지옥 속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누구나 자기만의 지옥을 가지고 있었다. 70억의 인간이 사는 세상엔 70억개의 지옥이 있었다. 자기 앞에 닥친 불행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존재, 그게 우리였다.


영화 <해피 홀리데이>(2014)에서 시한부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심스러운 존재들이란다.

그러니 함부로 판단하거나 싸우지 말아라.

결국엔 다 부질없으니까.

이 모든 게 다 부질 없단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 모두 제각기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아픈 만큼 다른 이들도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면,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을까?


작가 모건 하우젤은 만약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저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경험했기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도 저렇게 생각했을까?’


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어느 인도 현자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했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만 고통받는다는 생각을 깨준 건 '알고 보면 누구나 다 힘들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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