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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늪에서 나를 만나다

분노가 내게 말해주는 것은

by 김글리


분노가 내게 말해주는 것은


사기 사건 이후 가장 오래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분노였다. 전 재산을 잃은 일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내가 구축해온 모든 세계의 붕괴였다. 누군가 조금만 건드려도 활화산처럼 화가 터져올랐다.


본디 감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분노 역시 그냥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욕구가 방해받거나, 가치관이 짓밟혔을 때, 소중한 것이 건드려졌을 때 인간은 크게 분노한다. 사기사건은 내가 매우 아끼던 두 가지를 완전히 빼앗았다. '돈'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내게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피땀 흘려 모은 삶의 결실이자 내 기반이었다. 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으로, 어릴 때부터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다. 번 돈은 80~90%를 저축했고, 100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왠만한 거리는 버스도 타지 않고 걸어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을 사기 당해서 잃어버린 것이다! 돈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고통도 컸다.


분노가 끓어오를 때마다 나는 글로 쏟아냈다. 무엇이 나를 자극했고, 왜 분노했는지 적었다. 그렇게 분노를 따라가면서, 그 밑에 숨어있던 진짜 감정을 마주했다. 분노 뒤에는 수치심이 있었다.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서야, 내 우울과 분노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나의 수치심, 그 오래된 그림자


수치심은 인간만이 느끼는 매우 사회적인 감정이다. 에릭슨의 사회심리 발달에 따르면 인간은 만 2세부터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충분한 수용과 공감을 받지 못했다면, 특히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존재의 긍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결핍을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형벌 아닌 형벌인 셈이다.


"또 딸이야?"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아들을 바라는 아버지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며 삶을 시작했다. 막내라 귀여움은 받았지만 그 뿐,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기억이 없었다. 오랫동안 작고 약한 아이로, 귀엽지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살아왔다.


존재에 대한 결핍이 쌓여가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부족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자라났다. 나는 자주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 존재 자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누구보다 거칠게 스스로를 비난했다.


‘넌 안 돼. 이것 밖에 못하다니.. 쯧쯧. 쓸모없는 것."


다른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실수하거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즉 내 쓸모를 입증하지 못하면,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그 아래엔 '나는 근원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때문에 타인의 평가에 쉽게 휘청거렸고, 근거 없는 비난에도 적절히 방어하지 못했다.


융은 수치심을 ‘영혼을 갉아먹는 감정’이라고 불렀다.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죄책감과 달리, 수치심은 자기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이렇게 생각하도록 한다. ‘내가 틀려 먹었어. 내가 부족한 거야.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 이같은 수치심이 만성화되면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로 평가절하 해버린다.


자기 존재를 의심하는 수치심은, 때론 우울이나 분노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쉽게 우울감을 느꼈던 이유, 자주 죽음을 떠올린 이유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인정결핍이라는 먹잇감


그런데 이번 사기 사건은 나의 이런 수치심을 정통으로 쏘아버렸다.

사기꾼은 내가 가장 갈망하던 것, '인정욕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인정욕구: “당신의 있는 그대로 인정해요. 당신은 사랑받을만한 사람입니다.”


사기꾼들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사람에 대해서, 특히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 전문가들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데, 사기꾼들은 이 부분을 기막히게 찾아내 공략한다. 그들은 ‘심리’를 먼저 뒤흔든다.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데, 이는 주로 외로움, 탐욕, 불안, 죄책감, 인정욕구와 관련돼 있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자기만의 심리적 약점이 있기 때문에 사기꾼에게 엮이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흔들리게 되어있다.


이들은 그 심리적 약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믿음을 쌓아간다. 사기꾼들은 나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가 가치관이 매우 중요하고, 존재에 대한 인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사기꾼의 말에 나의 방어벽은 쉽게 무너졌다. 한번도 사기꾼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속이리라고, 의도적으로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악마가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어쨌거나 인정결핍을 정통으로 찔려버린 나는 사기꾼을 믿기 시작했고, 그렇게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하 변호사들을 찾아 다니던 중, 사기꾼을 변호해봤다는 변호사를 만났다. 그 변호사 말에 따르면, 사기꾼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룬다고 했다.


"어휴, 한 명이 아니에요. 먹이를 찾는 놈, 시나리오를 짜는 놈, 응대하는 놈 등등 최소 서너명 많게는 열명까지도 팀으로 일합니다. 밥 먹고 사기치는 것만 연구하는 놈들인데, 그놈들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쉽지 않아요."


사기꾼은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놀랍도록 잘 파악했었다. 나중에 사기꾼과 나눈 대화를 돌아보니 그 방법이란 게 단순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갔다. 예를 들어 내 꿈이 뭐고 인생 목표는 뭔지, 취미생활, 직업, 가족관계, 시간 날때 하는 일 따위를 질문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파악했다. 일반적 대화라면 그저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의 시간이었겠지만, 사기꾼이라면 전혀 다르다. 그들은 그런 사소한 대화에서도 상대의 특징, 가치관, 재력 등을 파악해 얼마나 빼먹을 수 있을지 견적을 낸다.


그들의 수법을 파악하기 위해, 내가 왜 속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이후로도 사기꾼과 나눈 대화를 수 십번 복기했다. 그 때마다 내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느낌에 수치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기사건이 밑바닥에 웅크려 있던 수치심을 멱살잡고 끌어 올린 덕분에 나는 정면으로 수치심을 마주하고 말았다. 언제나 내 존재를 뻥 뚫어놓은 그 존재를.




수치심이라는 오래된 구멍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쉽게 무력해지고 만다.

짜증나고 한심한, 수치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어느 날, 내 안을 들여다보다가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7살 정도 되어 보였고, 단발머리에 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주 귀여웠는데,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많이 외로워 보였다. 나는 다가가 말 걸었다.


-안녕, 꼬마야, 여기서 뭐하니?

“엄마 기다려요. 엄마가 이따 맛있는 거 많~~이 사가지고 올 거에요.”

-좋겠네! 그런데 넌 참 귀엽구나. 넌 날 모르겠지만 난 널 잘 알아. 너를 많이 아낀단다.

“정말요? 우리 언니는 맨날 나 때리고 욕하는데요.”

-그건 언니가 순간 욱해서 그런 거야. 누가 너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해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돼. 넌 누가 뭐라 해도 귀한 존재니까. 외로울 땐 내가 네 편이란 걸 꼭 기억해. 알겠지? 약속!


순간 아이의 얼굴에, 햇살처럼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내 마음까지 환히 밝아지는 웃음이었다. 그 순간 느꼈다. 내가 평생 갈망했던 건, 그 아이가 기다리던 것과 같았다는 걸.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있어주겠다고. 그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였다.


아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 안에 깊이 패여 있던 구멍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구멍은 차갑고 거칠었지만 부드럽기도 했다. 나는 구멍에게 말 걸었다.


‘좀 모자라도, 실수해도 괜찮아. 인간이잖아.’


잘 하는 거 하나 없고, 남보다 뛰어난 것도 없고, 약하고 부족한 것들로 가득한 나의 구멍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뻥 뚫린 구멍 안엔 수치심이 우물처럼 담겨 있었다. 안쓰러움이 올라왔다. 괜찮은 척, 잘난 척 아둥 바둥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진한 외로움과 괴로움이 담겨있었구나.



수치심의 늪에서 길을 찾다


수치심은 감출수록 더욱 번성한다. 수치심을 해독하려면 감추는 게 아니라, 대놓고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 쨍쨍한 햇볕에 말리듯, 자신의 부족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털어놓거나,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동안 수치심을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그러면서 내 밑바닥도 함께 보았다. 나의 오만함, 탐욕, 인정욕,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한때는 목숨 걸고 감추려고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치심은 오랫동안 깊은 우울과 분노, 자기부정의 뿌리로 작용했다. 하지만 수치심을 마주하고마음이 아주 많이 편해졌다. 수치심에 '장화신은 고양이'라는 이름도 붙여줄 만큼. 수치심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주 음흉한 녀석이다. 때때로 나타나 모든 기를 팍 꺾어놓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젠 녀석을 마주한 이상, 더 이상 피하거나 숨겨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구나 장화신은 고양이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잖아?


세상에 결핍없는 존재는 없다.

인간인 이상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으니. 나도 그런 인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수치심을 통해 나의 불완전함을 보고 나자,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졌다.

그들도 나처럼 불완전하고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이젠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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