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통의 두 얼굴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

by 김글리

태풍은 한 번만 지나가지 않는다


투자사기로 한 순간에 전 재산을 잃고, 한 달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고, 비정상적이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건·사고를 당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돈만 잃은 게 어디냐”라는 위로도 들었지만,
전 재산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분노와 울분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한 번이 아니라 몇 십번, 몇 백번이고, 계속해서.


나는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나만 생각했고, 내 삶에 집중하며 살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삶이라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비정한 곳인지,

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알게 되었다.

고통 자체를 깊이 생각하면서 고통이 가진 또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재력을 일깨우는 힘


예전에 ‘팔자’를 이해해 보려 명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배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아무리 좋은 팔자를 타고나도, 초년에 고생하지 않으면 잠재력이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생한다'는 건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궁리를 하고 온 힘을 쓴다.

그때 평소엔 발현되지 않던 능력이 발동된다.


영웅들을 조사해 보면, 어릴 때 부모를 일찍 여읜 경우가 많다.

나폴레옹은 15살,

칭기즈칸은 9살,

알렉산더 대왕은 20살,

넬슨 만델라는 9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감은 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을 일으킨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

내면에 잠들어 있던 자기 보호 본능이 깨어난다.

그 결과 그들은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스스로를 지키고 변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평화롭고 안정적일 땐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이 닥치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는 왜 사는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묻기 시작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부질없다


부질없다는 말의 어원을 아는가.

'부질없다'는 원래 '불질이 없다'에서 왔다.

불질은 쇠를 단단하게 만드는 단련의 과정이다.


대장간에서는 쇠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불에 달구고, 식히고, 다시 두드리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충분히 단련과정을 거치지 않은 쇠는 금세 휘어져 쓸모가 없었다.


증평대장간 불질 장면 (출처:아웃도어뉴스)

시련은 인생의 불질과 같다.

삶이 우리를 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불편하고 뜨겁고 아프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단단해질 수 없다. 그러는 동안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인생은 축제라 믿었고, 힘들어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고통을 외면하고, 슬픔은 카펫 아래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하며 그동안 피해왔던 고통과 대면했다.

그러지 못하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나날이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본 그 순간,

그 안엔 내가 몰랐던 진실이 있었다.

고통은 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숨은 힘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하늘이 시련을 주는 이유


겪어내기 힘든 어려움을 시련이라 한다.

'시련(試鍊)’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시험할 시(試), 단련할 련(鍊).

즉, 시련은 하늘이 인간을 시험하고 단련하는 과정을 뜻한다.


맹자는 역경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에게는
그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 뼈를 아프게 하여
그 사람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기국과 역량이 있는지 시험하나니,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났거든
내가 혹시 하늘의 선택을 받은 건 아닌지 돌아보라.”


예전에는 이 말이 현실감 없이 들렸다.

하지만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의 고통을 겪고 나니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없었다.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는 생각보다,

하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려고 이런 시련을 줬다는 생각이 4,517배 낫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하늘이 계획한 일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허락한다는 뜻은,

이미 우리 안에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는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일어설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을 발동시킨다.

그것이 바로 고통의 진짜 얼굴이다.


고통은 우리를 부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날지를 가르친다.





keyword
이전 03화불행 속에서도 좋은 면을 찾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