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시간의 경계가 뭉게질 때
시간이 지나니 정말 싫었던 무엇들 중 몇몇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나 애정하는 대상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고, 애정은 찾아낸 내 안의 다른 모습에 놀랐던 감정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를 설명해 줄 상태 중 하나는 싫음으로 바라보는 대상 몇몇은 남아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현재다.
아무래도 그렇다. 자아의 빛을 키울수록 원치 않는 그림자도 분명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는가. 산다는 것엔 알아가는 일이 동반되고 앎이란 무언가를 파내야 얻을 수 있으며 판다는 것은 일시적인 좁아짐이 아니던가. 좁아진다. 매일 좁아지고 또 좁아진다. 고개를 들면 저마다 깊이가 다르게 파헤쳐진 넓은 들판이요, 이내 다시 쳐박아야 할 타조의 숨는 머리들이다.
안녕. 그렇게 말하고 싶다. 과거는 영영 떠나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음으로 나의 오늘이 가볍기를 바란다. 그런 소망을 품은 마음, 타조의 벌판 위에 벽을 세우곤 한다. 과거의 벽돌과 감정의 시멘트로 세워진 조그만 그림자를 얻기 위해 그래왔다. 그림자가 거둬지기 전까진.
정오의 태양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줄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고 우두커니 세운 벽과 먼지로 어지럽게 대충 메워진 구멍이 하찮게 느껴졌다. 머리를 숨길 타조의 구멍이 메워진만큼이나 펼쳐진 넓은 세계는 여전했다. 벽은 대지에 남겨진 하나의 선이 되었고 이런게 나름, 호랑이가 남기는 가죽과 같은 것일까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