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수능을 보는 사람들과 수능이라는 하루의 상황과 이 하루를 만드는 사람들을 이전에 비해 상세히 다루지 못하는 뉴스를 보았다. 그것이 슬펐다. 수능의 하루를 접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의 그 시간, 그것이 본인에게 사회가 관심을 가지는 - 물론 고3이라는 집단을 보는 제한된 시선이었지만 -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음을 알고 있어서다.
이후 진학했던 대학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던 사회는, 세상은 다양한 이들로 채워진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급격하게 성인으로 탈바꿈한 수험생은 '진짜 인간'들의 '이야기'를 뉴스로서 맞이하며 내면의 세상이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어쩌면 좀 더 자유로워졌다 믿은 시간과 장소 속에서 맞이한 비슷한 또래와의 조우가 평면 TV의 뉴스보다 쉽게 찾아왔던듯하다. 누군가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누군가는 그 시험을 치를만한 여건이 되질 않고 누군가는 그 시험을 볼 자격을 잃고 누군가는 시험장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다는, 이 다양한 '나'들의 이야기.
그렇게, 모두가 사람이었다. 수능을 통과했든 아니었든 고3으로 주목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내 앞에 숨 쉬며 서있었다. 나에게만 그들은 지워진 존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가려져있을지 놀라워하던 궁금증은 이내 반복된 충격에 겁을 먹고 숨어버렸다.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던진 충고를 수거해가지 않던 무책임에 종국에 나는 거짓말쟁들의 세상을 봐버렸다고 자신했다. 이 세상은 서로를 가리는 커튼과 이 커튼 너머를 보지 못하는 눈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대한 나의 무지와 나약함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한계와 우리 내면의 한계가 만들어낸 침묵의 저주일까 봐 무서웠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의 존재는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역사도 그만큼 느렸다. 학생들의 생활사에 마음을 주지 않는 딱딱한 교수와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삶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 주목받지 못한 이들은 사그라들고 감춰져야 할 것들은 쉬이 휘발되는 '궁금증'처럼 지워지는 현장을 볼 수밖에 없나 싶었다.
그러나 역사는 어떠한 시대적 변환기로서 응답했다.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의 목소리를 전하고 지워졌던 흔적을 다시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자 본인은 '나는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겨울의 불꽃들을 보며 자각몽을 꾸는듯한 이질적인 현실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설 같은 당황스러운 진실이 드러났고 더욱 맹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뿜어내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 일생에 겨우 한 번 허락된 뉴스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목소리들마저 거리로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동적인 과거를 지속하고 스스로를 폄하하던 쳇바퀴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잊었던 궁금증이 낯설지 않게 온 몸을 휘감자 우물쭈물하던 사람이 거울에 비취었다. 만인의 마음이 당혹과 분노로 일렁이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나', '커튼 뒤의 나'를 마주한 뉴스의 한 장면에 부끄러울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