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느낌
심리 검사를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였다고 의사도 말했다. 지능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반응속도와 처리속도, 억눌린 감정이나 그것으로 촉발된 신체화 증상, 대부분 놀랍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직접 그 문장을 접하고 보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우울감이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결과는 우울증이 주는 다른 여파보다 꽤나 충격이었다. 표정이 없었던 것도 반응이 느려진 것도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인가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전보다, 그러니까 그 이전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세세히 관찰하지 못하고 경탄하지 못했다는 좀 더 객관적인 사실 앞에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고 싶었고 오래도록 다채롭게 쓰기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겐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나의 오감을 통해 전해주는 육감이 필요하다. 하나 인정해야 한다. 친구의 말처럼 상대의 무언가를 알아차리거나 돌보기에 내가 아직은 너무 아프다는 현재의 상태를 말이다.
하지만 이 절망은 너무도 높게 느껴진다. 머리 속 어딘가를 틀어막아 글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하는 둑이 있는 것만 같다. 차가운 바람도, 따스한 햇빛도, 사람들의 표정도, 오래 걸은 발바닥의 아픔도 그냥 평등하다. 어떤 높낮이도 없이, 어떠한 색채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