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감사

뜻대로 안 되는 가물가물한 시간 사이에서

by 쓴쓴

우울증 환자는 마음에 남겨진 상처와, 트라우마와 관련한 기억을 끌어내지 못하곤 한다. 때문에 간혹 괴롭다. 아예 기억을 못 하면 좋을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그곳에 있는데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이 꺼림칙하고 불안하다. 나에겐 무척 그랬다. 나에 관한 기억을 잊어버리면 나를 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현재의 나를 빚은 과거 사건들을 지인들과 대화하곤 하는데,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일 때가 많았다. 좋았던 기억도 별로였던 사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색채로만 칠해진 도화지를 보는 것 같다. 무언가가 '거기'에 있지만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다.


기억은 그만큼 중요하다. 어제와 나와 오늘의 나를 같다고 보는 이유여서 더욱 그렇다. 어제의 기억이 지금의 기억과 긴밀하게 엮였기 때문에 나는 내 자아를 통제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은 자괴감 때문에 우울하다. 이 통제할 수 없는 빈 공간이 너무 커 보인다.


통제할 수 있다 느낄 땐 고민이 늘 뿐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고통만 는다.




가만히 있으면 잠만 오는 게 우울증 환자다. 그래서 괜히 안 해 보던 짓을 해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벌써 올해 두 차례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는 참이다. 3-40분을 천천히 걸으면 피곤해지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그렇게 오늘도 여전히 따가운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회색 체크무늬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께서 길을 물으셨다.


시청을 가는 길을 물으시던 그분의 태도는 정말이지 신사의 표본이었다. 사뿐히 움직이지 못하는 나약해진 몸이지만 마음이 베어 나오는 몸짓에서 정중하게 묻는 한 인간이 보였다. 한참 어린 나에게도 경어체를 쓰시며 고개를 숙이시는 멋진 분이셨다.


그런 분에게 나는 걸으시라 권유했다. 답답하게도 나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했던 까닭이다. 조금만 걸으면 시청이 보일 위치에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시기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심전심은 전혀 없었다. 변명이 필요 없었다. 그때 옆에 계시던 여자분이 도움을 주셨다. 두 갈래 나뉘는 길의 중간 지점, 젊은 내가 보기에도 알아보기 어려운 곳에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제야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내 반응의 전부가 될 뻔했다.


사실 그때부터 난감해졌다. 할아버지의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사실과 그분의 귀가 어둡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건널목을 건너다가 내 뒤를 따라오시는 할아버지께 돌아가, 그분의 팔을 잡고 돌이켰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할아버지, 이 방향이 아니에요.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같이 걸었다. 다행히 영화 예매권에 찍힌 상영 시작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천천히 그분의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앞서 걸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뒤에서 걸으면 재촉하는 듯하고, 같이 걸으면 부축해야 할 것 같아 자존심을 건드릴지 몰라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면 길을 안내하는 자가 되어서 조금 앞서면 그만이었다. 반박자 빠르게, 한 걸음 정도만 앞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모든 노선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모든 번호가 시청을 향했다.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면서 웃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아무거나 타셔서 네 정거장만 가시면 돼요. 그러자 모자를 벗으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감사합니다. 나도 절로 몸을 숙여 인사했다.


몸을 돌려 반대편 방향으로 걷는데, 마음이 걸렸다. 뙤약볕에 시청까지 걸어가야 하는 할아버지에게 무엇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간식으로 먹으려던 초코바를 드리면서, 할아버지 걸으시다가 당 떨어지면 드세요, 했더니 천 원을 내미셨다. 아니에요, 받으려고 드린 것 아닙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하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저분도, 저 정류장에 앉아있는 한 남자도 소년이었을 때가, 나처럼 청년이었을 때가 있었겠지.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그런 시절을 겪어오셨겠지. 괜시레 마음이 아렸다. 걱정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방금 막 도착한 버스에 오르는 중절모를 보았다. 조심스러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일 듯 아팠다.




우울증 환자에게 권유하는 치료방법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늘린다, 가 그중 하나다.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는 건데,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다. 감사를 찾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세상에 불만이 많고, 불만 가득한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이들에게 감사를 요구하는 일은 분명 낯선 권유다.


하지만 뜻밖의 감사는 통제할 수 없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통만 느는 줄 알았는데, 감사도 는다. 다시 말해, 통제할 수 있는 상황보다 오히려 더 선택지가 많아져서 무엇을 선택하든 마음가짐만 잘 가지면 그만이다. 그래, 사실 그것이 어렵긴 하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이 나에게도 감사가 된다는 진리를 발견한 오늘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기꺼이 나의 도움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분명 오늘 나의 기분을 좋게 했음은 분명했다. 그냥 이유가 없는 행복이었다. 그분이 조심히 시청에 도착하시기를 잠깐이나마 바라며 도와드렸던 모든 순간이 다 생생히 기억이 났다.


기억을 하지 못하면 기억할 일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니까. 아직 나는 여전히 나를 잃지 않았으니까, 나는 기억해야 할 아름다움을 잊지 않았으니까.




우울하면 통제력을 잃는다. 그럴 땐 조금 더 용기를 내서 통제할 수 없는 바깥으로 나는 나가려고 이제부터 시도하려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갑자기 찾아온 행운처럼, 아름다움을, 감사하는 행위를 베풀 기회가 갑자기 찾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오늘 감사의 기억을 한 가지 더 만든다. 괜찮다. 망각의 호수에 빠져버린 감정들은 나중에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오늘은, 내일 기억할 아주 멋진 감사했던 흔적을 새겨놓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