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없다

무엇보다 그곳은 어딘가 싶었다

by 쓴쓴

쓰레기를 버리러 뒤로 몸을 굽혔다가 아차, 했다. 참, 쓰레기통을 버렸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채로 쭉 밀어 뻗은, 게으른 다리와 팔이 무색해진다.




올해 초부터 소설을 쓰려고 자료를 모았다. 지워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사람들을 모았다. 얇고 좁은 곳에 이들을 모아 보고 나니 한스러웠던 까닭은 이들을 드러낼 나 자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데 있었다. 타자를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으므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안다고 믿었던 것이 차지하던 장소를 한 번 비워버리면 기억의 창에 잘 드러나질 않는다. 그게 가상이든 실제든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무엇을 담았던가 생각해 보아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기막힌 경우다. 그 필요를 알아차려야만 사라졌다는 사실을,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안다.




가끔은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진 않았나 고민한다. 나에게 있어야 할 감정, 사고, 열정, 의지 그런 것들이 지워지진 않았나, 하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예전에 두부 광고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오른다. '더이상 뺄 게 없을 때 완벽하다' 라는 뜻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정확한 홍보 문구는 기억나질 않는다. 뭔가 색다른 뜻인 것 같긴 한데, 나는 그 당시에 무슨 숨은 뜻이라도 있을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좋은 것 더하기 좋은 것이 완벽한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자꾸 빼고 덜어내야 좋아진다는 말이 새로웠다.


그럼 나는 지금 무얼 잃어가고 있지 않고 더 나아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 내 방을 예로 들어, 조금 쉽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쓰레기통을 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오래 쓰다보니 무언가 안에서 자라는 듯했다. 악취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곰팡이겠거니 해서, 급히 내버렸던 기억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무엇을 버렸나 혹은 잃었는지 생각해본다. 스스로 내린 결론처럼 필요를 알아차려야 무엇이 내 눈에서 가려졌는지 알 수 있다면,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찾아낼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내가 잃었는지 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더 많이 움직인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무얼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몸으로 밀고 나아가지 않으면, 몸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이 세상의 생리는 사람에게 가만히 앉아있도록 주문하질 않는다. 아 나와 같은 이에게는 지나친 고문이다. 그러나 자그만 자극에도 충분한 역치를 얻으니 참으로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또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