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성장

익숙하지 않다: 어린이로 남을 수 없다

by 쓴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은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다. 익숙해진다는 뜻은 여전히 그 나이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나이를 먹는다'는 성장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떠오르는 밝고 환한 상징과 같다. 사람은 영원히 성장한다. 배우고 익힌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세상을 탐색한다. 우리가 성장하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기에 무언가가 낯설다면 자신이 나이를 먹었으며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익숙하다면 당신은 둘 중 하나다. '영원한 살아있음'이라는 의미에서 신이거나 '영원한 죽음'으로서 시체와 다를 바가 없다.




공중 전화기 사용이 익숙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이제 공중 전화기가 낯설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한 아이들처럼 새롭진 않지만 반갑다. 그것이 낯선 미시감(과거에 알던 것을 처음 접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제는 내가 속했던 시대가 다 흘러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있다. 수화기를 들어 본다. 작은 목소리로 '동전을 넣어주세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 기계음이 반갑다.


한낮에 이어폰을 낀 채로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지나쳐 가는 어르신들의 낯선 눈빛을 읽어낸다. 그분들 눈에는 내가 혼잣말로 떠드는 것처럼 들렸겠구나. 날이 너무 더워서 잠깐 정신을 놓은 줄 아셨겠구나.


그러고 보니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할아버지 한 분께 잠깐 자리를 내어드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분에겐 그것이 익숙한 통신이었겠지. 그런데 수화기를 드시더니 금세 돌아서셨다. 다시 들어간 나는 수화기에 귀를 대보았다. 소리가 너무 작다. '동전'이라는 말이 얼핏 들린다. 그분에게도 공중 전화기가 매우 낯선 것이었겠구나 싶었다.




도착지는 같지만 새롭게 오가는 길을 고른 오늘, 담벼락에 맺힌 덩굴 꽃들을 보았다. 새롭고 낯설다. 아직 피어있는 꽃이 여기엔 있구나 싶었다. 이럴 땐 어머니를 닮아 어쩔 수 없나 보다 싶다. 예쁜 꽃이 보이면 담아두고 싶다. 그럼에도 난 어머니처럼 키우진 못할 거다, 아마도. 하지만 담에 걸리듯 맺힌 꽃이 낯설어지는 날이 오겠지,라고 언젠간 나도 나만의 화분을 마련하려 애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 하고. 나의 성장을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