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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Jan 12. 2022

오랜 정체로 흘린 시간

겨울의 강처럼

21년 11월 27일

새로운 영역을 알아보려 시도하는 일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끊임없는 호기심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관심사를 소비하고, 확장하고, 구매하고, 생산하고, 나눈다. 하지만 이제는 인류 모두가 공유해야 할 소비의 윤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오랜 철학자는 성인 백인 남자만이 인간 취급을 받을 때,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였다. 역사에서 지혜를 배우려는 우리는 인간의 정의가 협소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그 주장이 매우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팬데믹은 그 인간의 정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전 지구적 위험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가장 쉽사리 파괴시킨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노인, 병자들은 위험에 더 노출되고 더 약해진다.

코로나 변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빠르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자기를 정확히 복제해내기보다 약간 다르게 세대를 거듭하면서 진화한다. 그들은 당연히 인류 전체를 하나의 숙주로 생각한다. 그래서 변이 하며 잘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변이가 발생한다며 무책임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백인 과학자들이 실험 윤리를 어겨가며 흑인들에게 했던 생체 실험의 역사를 안다면, 백신 음모론이 생겨난 이유에 쉽사리 토를 달 수 없다. 오히려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서구권 사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팬데믹 창궐을 방치하는 원인을 찾는 게 더 난해한 일이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간의 영토가 인간 아닌 종의 영토에 지나치게 침범한 데서 유래했다. 대상이 타인이든 다른 종이든 공생과 공존의 윤리에 관한 고민이 인간 종의 호기심보다 너무 뒤처진 까닭에 인류 모두가 고통을 느끼지만, 공감이 결여된 개인의 사회성 성취에 관한 언급이 반복되는 인간 세상에 다시 아이러니를 느낀다.



21년 12월 1일

별 거 아니긴 해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행복을 부리는 창의력인 것 같다.

오늘 나의 가족은 집을 꾸미면서 겨울에 들어선 것을, 연말에 접어든 것을 기념했다. 기념한다는 행위는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겠다는 결정인데 나에게는 기억할 만한 의미가 몇 개 없어서 왠지 초겨울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연말도, 겨울도 그저 그런 것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을 설명할 것들을 무심결에 배우게 된다는데, 한 달 내 꿈자리가 사나운 까닭은 무슨 가르침일까.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지끈거리는 머리는 아직 덜 자란 탓일까.



21년 12월 6일

붕어빵 값이 올랐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작년에도 이 가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종이로 쓴 가격표가 너무 새 거다. 아닌가, 개수가 적어졌나. 앞에 놓인 핫도그도 왠지 작아진 것 같다.

얼마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 행복의 개수를 어림해보고 황토색 한 장을 푸른색 두 장과 맞바꾸었다. 현금은 오랜만인데... 겨울이 이렇게 오랜만에 왔나 싶었다.



22년 1월 1일

코로나가 지속되는 지난한 일상 중에서 대화와 낙담과 사랑과 슬픔을 지속할 수 있어 그리워질 해가 스러져 지나간다. 덕담으로써 새해 복이 뭘까 고민하다가 안전히 지켜진 삶을 감사하는 것만도 힘겨운 오늘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그러니 새로운 복을 말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든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하는 일은 먼 미래까지 상상할 수 있고 계획하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과 의지가 아닐까 하였다. 코로나가 예측의 불확실성과 그 내용이 항상 밝을 수만은 없음을 인간들에게 보여주었음에도 잃을 수 없는 인류의 유산이다.

인간성이 무엇인지, 인간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화를 찾아가는지, 그 둘이 서로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둘의 관계가 관련지어지긴 하지만 상보적이지 않는 게 아닐까, 질문의 낚싯줄이 던져진다. 그리고 역사로 남을 시간의 대양 위에서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내면에 새긴다. 산타가 존재하기를 바라는 오랜 믿음과 같이, 부디 물질과 에너지만이 영원한, 모든 것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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