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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Apr 09. 2024

 떠떠떠,떠

정용준


모음이 사라지길 원하는 화자는 벙어리는 아니다. 하지만, 차라리 벙어리가 되고 싶어 한다. 11살을 27일을 단 하루만 남기고 까맣게 만들어 버리고 싶은 화자. 고통의 시간이 그때의 화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말을 더듬는 자신에게 '책을 읽어'라고 강요하던 선생의 따분한 눈빛, 아이들의 놀림.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떠떠떠............. 가 다였다. 11살 화자의 교실에서 화자는 더듬는 말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교실 속 친구 중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갑자기 발작을 하고 쓰러진다. 껍질에 으깨진 곤충이 마지막 남은 신경을 떨고 있는 것처럼 발작을 한다. 그 발작 후 여자아이는 교실을 떠난다.

어른이 된 화자는 놀이공원에서 사자탈을 쓰고 일한다. 말을 할 필요가 없기에 화자에게는 그 보다 좋은 직업은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판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판다는 '갑자기' 잠이 드는 병이 있다. 그 옛날 붉은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관절 하나하나가 꺾이고 거품을 물고 왼쪽으로 쓰러진다. 판다(여자)는 이것을 '갑자기' 잠이 드는 것이라고 한다.

저 먼 세계에서 홀로 싸우는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위해 처음으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끝난다. 명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들린다. 그가 여자에게 전하는 사랑한다는 말이.

나는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가 여자에게 전한 메시지를 들었다.

여자가 '갑자기' 잠이 든다고 했던 것처럼,
그래 어쩌면 갑자기 잠드는 것 일 뿐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 아는 '갑자기' 잠드는 타이밍이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갑자기'가 있다.

나는 '환공포증'이 있다.
어떤 특정한 문양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경직되고 숨이 가빠진다. 그 잔상이 사라지기까지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크게 없다. 그런 것들이 보일만한 상황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마주하게 되면 그냥, 잠시 쉬면 된다.

특정 문양에 고갤 돌리거나, 놀라는 나를 보고
'헐, 이게 왜 무서운데.'
'뭐꼬'
혹은 비웃음이 날아온다. 몇 번인가 그런 일을 겪으며 담담해졌다.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도 않는다. 끈질기게 묻는 이상한 인간이 있으면, '그냥'이라고 답한다.

그렇다. 나는 '그냥'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딴 세상을 갑자기 마주치게 하는 것이기에. 누구라도 처음 가는 곳은 두렵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특정 문양은 내게 처음 만나는 세상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떠떠떠, 떠]의 화자도 그런 것이다. 그냥 말이 안 나오는 것이다. 장애가 아니라. 그냥, 갑자기.
말을 잘 못하는 건 '장애'가 아니다. 그냥이다.

본문 중,
'타인의 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게 가능할까? 장애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오직 확인만 가능할 뿐이지.'

이 문구를 읽고,
그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받을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나 있는 '갑자기'라는 시간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갑자기'라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을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환공포증을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전 세계 인구의 16%가 가지고 있다는(검색 창을 통해 찾다가 나오는 이미지가 무서워 자세히 보지 못했다. 정보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 이것은 때로는 나를 와르르 무너지게도 했다.

원인을 찾고 싶어 의사를 찾았던 적이 있다. 은테 안경을 쓴 의사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원인도,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도 주지 않았다.
'음, 그럴 수 있어요.' 내가 그에게 들은 말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세상에 그럴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명확한 원인이 없을 수도 있다.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렇 수 있지.'로 받아 들였다. 모든 일에 원인이 필요한 건 아니니.


자신과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거지, '틀린'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짓는 것은 누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의문이 든다. 한 끗 차이이다.
(범죄자나 사이코패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비(非)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상적이야. 비정상적이야. 판단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문장의 마지막에 와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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