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연극배우였던 어둠을 좋아하는 여자와 여자의 남편,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소년, 소년의 아버지, 견인차 기사가 서로 얽혀 있는 이야기이다.
각자의 하루를 따로 놓고 보면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하루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 소설에서는 보여 주었다.
여자가 아기를 차 안에 두고 전세금 송금을 위해 은행에 갔고, 연말로 사람들이 붐볐고, 은행업무를 마쳤지만 계단을 내려오다가 여자가 넘어졌다. 여자가 넘어지는 순간 아니, 은행 문이 닫히는 그 순간부터, 아니 내린 눈으로 길이 막히는 순간, 아니 소설이 시작되던 그 처음부터 불안감은 밀려왔다.
불안은 여자가 좋아했다는 어둠에서부터 시작되어, 아기를 꽉 죄고 있는 카 시트, 어둠을 좋아하게 된 연극에 대한 미련, 우물 안으로 떨어지고 있는 돌멩이에 불과하다는 대사, 맡은 일에 충실했다는 것, 우리들의 하루가 온전할 것이라는 것. 모든 것에 불안은 묻어 있었다.
우리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 틈에 끼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소설은 얽혀있는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 했다.
은행 업무를 보고 나온 여자는 소년과 부딪히고, 학원을 마치고 나온 소년이 만난 견인차 기사는 여자의 차를 견인한 사람이었고, 견인된 여자의 차 안에서 아기는 죽고, 여자의 남편은 소년의 아버지에게 해고를 이야기하고, 소년의 아버지는 죽음을 택하고, 소년은 아버지를 잃게 되었다.
반대로 소년의 아버지에게 해고를 이야기한 남편은 아기를 잃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를 잃었고, 온전한 삶을 살 수는 없게 되었다. 아기를 잃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각각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묶여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사는 삶에는 우연은 없다. 모든 것들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 같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저 제가 맡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말이 따갑게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학교, 직장, 혹은 가정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각자가 맡은 일을 한다고 우리는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하는 '맡은 일'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씨앗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맡은 일 속에 정의롭지 못한 일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일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상처를 준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온전한 하루라는 건 있을까?'하는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스스로 돌아보았다.
나에게 온전한 하루는 있었나?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았지만, 없었다. 온전한 하루라는 건 모순 같았다.
'그 어떤 것도 온전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건,
때론 우리에게 살아내는 것이고, 더 잘 살려고 더 빛나고자 하지도 않는것이고,
너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그저 나의 길을 터가는 수많은 날들 속의 순간들일 뿐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멍해졌버렸다. 슬픔, 안타까움, 애잔함 이런 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때론 너무 많은 생각은 오판을 만들기도 하기에 때론 흘러가는 하루에 나를 맡겨 보자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