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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Apr 16. 2024

 가나

정용준


소설의 시작은 붉은 사이렌과 함께였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알았다. 사이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소설을 읽다가 중간에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장면이 있어 나는 관자놀이가 아프도록 꾹꾹 눌러가며 소설을 읽어야 했다. 소설을 읽으며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얼마 없었는데 '가나'를 읽으면서는 찌릿찌릿 찔러대는 무언가 때문에 아팠다.  

죽어가면서 화자는 과거로 돌아간다.

흠모하던 여자는 삼촌과 결혼하고 말 못 하는 소녀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불만 속에서 폭력을 행사한다. 깡마르고 어린 여자아이에게 행하던 폭력이 어느 순간의 애정으로 물든다.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간 화자는 그곳에서 육지도, 고향도 잃어버린다. 망망대해 속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바닷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그렇게 화자는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화자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지금 내가 잠을 자는 것인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그렇다. 나는 죽은 것이다.'
'죽음은 잠처럼 익숙하게 하지만 예상할 수 없게 찾아온다. 화자에게 죽음은 잠을 자는 것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시간은 죽고 싶다는 생각의 끝없는 회귀이고, 삶은 그것을 버텨내는 불안함이자 미쳐가는 정신의 바다를 항해하는 돛 없는 배였다. 난 끝없이 표류하고 조금씩 침몰했다.'

죽음에 대해 화자가 묘사하는 표현은 아름답다.
그 과정이, 그 모습이 작은 내 머리에 각인될 만큼 말이다. 섬세하게 아니, 아름답게 풀어놓은 죽음에 대한 묘사와 선원들이 맡은 썩은 냄새. 두 감각은 서로 대립되어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게 해 준다.

죽음을 수습해야 할 자에게는 시체가 썩어 소멸하는 과정이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만들어지는 냄새는 역하다. 하지만 정작 죽은 자신은 비로소 다시 태어나는 길이 되어 준다. 그렇기에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가 있다. 죽음은 고단한 삶을 끝내고 행복을 여는 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화자는 아내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짜 벙어리는 화자 자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는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라디오를 통해 시타르를 통해서 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다. 정작 말할 수 있으면서 말하지 않은 것은 화자다.

화자는 죽음 이후, 바람처럼 가벼워져서야 아내가 좋아하던 노래가 되고, 아내가 있는 고향으로 가고, 아내의 성대로 간다.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화자가 바닷속에서 죽어간 모습일 표현된 부분이 있다.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바지에 붙어 있던 검은 고동들은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허벅지를 빼곡하게 붙었다.'

이 구절이 나는 너무 상상이 잘되었다. 아니, 상상이 아니라 사진처럼 각인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동들의 형상이 뇌에 박혀버린 느낌이었다. 고동들은 소멸을 끝내고 소생을 꿈꾸는 자의 앞날에 들러붙은 하루살이 같았다. 나는 한동안 그 잔상에 박혀 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도, 자료 조사도 접고, 써야 할 글도 접고 지끈거리는 이마를 아프게 눌렀다.

그동안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죽음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고, 삶은 치열함의 연속이다.'

죽음은,
내가 생각한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언제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로든 갈 수 있기에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고통의 연속 선에서 끊임없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 꿈을 꾸어야 하는 이유, 목표가 있어야 하는 이유....
모든 것에 이유를 찾아야 한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을 모르면서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했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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