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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Apr 23. 2024

슬픔온대

김갑용 작가님


   이 소설은 소설 공부를 하려고 읽었다. 과거와 현재의 전환에 대해서 참고하면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읽었다.


  읽은 후 슬픔과 뭔지 모를 찝찝함이 몰려왔다. 말하고 싶은데 말하기 어렵고, 말해야 하는데 말할 수 없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신이라는 여자이다. 신은 학습지 물류센터에서 일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화자는 표현한다. 그곳에서 석이라는 나이가 자신보다 어린 남자를 만난다. 덩치가 큰 석은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석과 잠자리를 하고, 석이 사귀는 거냐고 묻자 집으로 가버린다. 그러던 중 블로그에 옛 남자친구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글을 남기고 신은 자신도 걸렸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석과 살림을 합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신. 저축하고 석의 검정고시를 돕고 현재의 자신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 신은 소설을 즐겨 읽는다. 석이 이것을 보고 신에게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석은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조르지 않고 회사의 분위기도 이상해진다. 사람들이 모여서 쑥덕거리는 일이 잦아지고, 인터넷 신문사에 근로자 K 씨를 상대로 유부녀 직장인 동료들이 간음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나온다. K 씨는 석이다. 석은 하자고 해서 했다고, 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는 이미지 때문에 조용히 덮으려고 하지만, 커뮤니티 상에 회사명이 노출된다. 그제야 회사에서는 진상조사를 하고 주동자는 해고된다.


   해고되는 세 명의 주동자는 신에게 외로워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랫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그랬다고…. 변명인지 이유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한다.


   신은 제보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부인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석은 달라진다. 직장에서도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석은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동면하듯 방에서 살아가는 석. 신문사에 신고한 것은 신이다. 신고했다는 사실을 자신조차 잊고 있었다. 예전 남자친구를 통해 신은 이 일을 신문사에 신고한다. 그리고 그 남자친구로부터 소설을 받는다. 소설의 주인공은 신이다.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마무리되어있다. 소설을 읽고 신은 생각한다. 자신의 삶도 더는 새로운 곳이 없을 거라고 여긴다. 그리고 잠든 석을 두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화양동이라는 곳이다. 길거리의 오물이 하수구의 냄새가 이질적이지 않은 곳이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얼핏 함축되어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책의 한 구절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세계에는 나쁜 법칙이 있어. 가난한 사람은 뭘 해도 안 된다. 같은 거. 그런데 그건 잘못된 거거든. 원래 세계는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은데 나쁜 법칙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쁜 걸 몰아주는 거야.’

 ‘남아메리카의 경우 풍족하게 자원이 분배되니 차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침략해 와서 땅을 점령하여 자원이 한정 되기 시작하면서 선사 부족들에게도 계급이 생기고 차별이 생겨난 것이다.’


   어떤 것이 가난한 것인지.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우리는 상쇄시키거나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나. 가능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의 가난의 기준은 재산의 정도였다. 지금 내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글쎄, 잘 모르겠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진실로 어떤 것이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지 애매해졌다. 하나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은 재산의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장에 화자는 자신에게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운다. 가장 슬픈 대목이었다. 더 이상의 새로운 내가 없다는 것, 어쩌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마음이 죽었고, 희망이 죽었다는 거 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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