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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Apr 14. 2024

12화  그 언덕을 결국 넘지 못했다.


막내 애기씨가 유복자로 태어나고 2년이 지난 후 위수도 큰 딸을 낳았다. 창근은 카투사로 7사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딸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다. 시동생 둘, 시누이 둘을 큰딸 희자와 함께 키웠다.

카투사를 제대하고 창근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벌이는 지출을 쫓아가지 못했다. 아무리 많은 구름이 있어도 하늘을 다 채우지 못하듯 살림살이도 그랬다. 구멍 난 하늘을 막고 비가 새지 않기를 바라는 형상이었다.

막내 애기씨 희애가 6학년 되던 해 희자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빠듯한 살림에 시동생들은 고등학생이었고, 두 시누이를 학교에 보내야 했기에 위수가 한 선택이었다. 희자 아래로 줄줄이 동생이 3명이었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만 둘이었다. 모두를 교육시키기에는 허리띠는 졸라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와의 전쟁은 희자가 11살 되던 해에 시작되었다. 위수의 고단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위수는 희자를 깨워 꼴을 베어 오라 이르며 새벽을 열었다.

"일나라, 소 먹을 거 없다. 꼴 베온나."
"몇 신데...."

내 먹을 것도 없는데 소 먹을 게 대수가.

희자가 궁시렁거렸다. 그래도 두 눈을 비비면서도 어린 희자가 몸을 일으켜 들로 나간 것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였다.

희자는 제법 똑똑했다. 한글도 빨리 깨쳤고, 셈에도 빨랐다. 계집아이라 그런지 눈치도 빠삭했다. 그 빠삭한 눈치로 벌써 자신이 학교에 다니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꾸역꾸역 가방을 쌌다. 위수는 희자가 싼 그 가방을 풀었다. 아침마다 쌌다 풀었다 책보의 수난이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는 싸움이었다.

배움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희자와 배움을 말려야 하는 위수 사이의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국민학교를 가려면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야 했다. 새벽 희자가 책보를 싸서 작은 언덕으로 먼저 뛰어 올라갔다. 그 뒤 희자의 막내 고모 희애가 가방을 메고 따르고 또 그 뒤에는 할머니가 따라왔다.

할머니는 항상 언덕 밑에 서서 희자를 불렀다.

"이 넘의 가시나야 빨리 내리 온다. 집에 일할 사람 없다. 니 그리 핵교가면 누가 아들 보노. 어이"
"......."

언덕 숲에 숨어 할머니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필살기기 시작되는 것은 이때쯤이었다.

"너그 엄마 산달 얼마 안 남았데이. 아 나오면 우짤끼고 후딱 안 오나."
"왜 할매는 내한테만 그라도. 고모도 있는데...."

희자는 흘깃 희애를 째려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할머니의 욕설이 온 동네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막내고모를 기다리고 있던 희자는 할머니를 보고 숨었다 이내 언덕을 다시 내려왔다. 할머니의 서슬 퍼런 눈에 아침 온 동네를 깨우는 욕설에 고개를 푹 숙이고 희자는 털레털레 길을 되돌아왔다.

막내 고모 희애는 희자를 따라 내려오다 할머니의 손에 쫓겨서 학교로 향했다.

"엄마 내도 고마 학교 안 갈란다.... "
"이 가시나 어디서 학교 안 간다 소리가 나오노? 후딱 안 가나."
"실타. 희자도 안 가는데..."
"니랑 같나. 후딱 안 올라 가나."

할머니가 흰 고무신을 벗어 손을 치켜들면 그때서야 희애는 언덕을 넘었다.

막내 고모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고, 배움에 뜻이 없었다. 그런 고모는 학교를 다녀야 하고, 자신은 그만두어야 하는 현실에 희자는 소리치기도 했다. 엄마인 위수에게 왜 불공평하냐  이 지겨운 싸움은 희애가 중학교를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해 희자는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1969년 11살.

희자의 고단했던 하루는 새벽 이슬이 다 내리기도 전에 시작됐다.

여름이면, 소 꼴을 베러 들에 나가 한 짐을 해오고, 집안일을 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 지나면 밭에 간다. 해가 완전히 뜬 시간에는 등허리가 뜨거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시간대를 피해 땅콩, 들깨, 감자 밭에 가 잡초를 뽑고, 수확을 했다.

가을이면, 서리가 내려 길을 미끄럽게 하기도 전에 남의 집 감나무 밭을 갔다. 그곳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오는 것이 희자의 일이었다.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감을 줍기 위해 가면 이미 희자의 친구들이 줍고 있다. 떨어진 감을 주워 가는 것은 서리가 아니었기에 경쟁이 심했다. 남보다 더 일찍 가서 주워야 많은 감을 주워 올 수 있었다.

그때는 희자의 집에서는 감나무가 있었지만 많은 양이 되지 않았기에 새벽을 이용해 감을 주워 왔다. 주워온 감은 위수가 삭힌 감을 만든다. 삭힌 감은 겨울 내내 좋은 간식이 되기도, 반찬이 되기도 했다.

겨울이면, 소가 먹을 꼴이 없기에 소죽을 끓였다. 그리고 홀치기를 시작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사랑방에 앉아 홀치기를 했다. 돈 벌이는 쏠쏠하게 되었고, 방법은 쉬웠다. 장사치가 준 비단에 새겨진 점을 바늘에 꿰어 실로 홀치면 되는 것이었다. 홀친 부위만 염색이 되지 않아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모양이 만들어졌다. 이 일은 꽤 돈이 되었다.

그 일은 위수네 식구들의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데에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다.

봄이면, 뽕잎을 따러 밭으로 갔다. 희자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날부터 위수는 누에를 기르기 시작했다. 누에는 신선한 뽕잎만 먹었기에 매일 아침 희자는 아침 첫 이슬을 맞은 뽕잎을 따왔다.
누에가 먹는 뽕잎은 조금이라도 농약이 묻은 뽕잎을 먹으면 죽었기에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 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뽕잎은 산속에 숨어 있는 밭에 심었고 희자는 매일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어둠 속 밭을 향해 걸어야 했다.




*홀치기 : 대롱같이 달린 끝에 낚싯바늘 모양이 달렸는데 비단 천을 공급받아서 천에 새겨진 점을 바늘에 꿰어 실로 홀치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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