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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Apr 07. 2024

11화 갱상도 시어매는 한 솥에 삼아도 한 맛이다.


창근은 그 해 겨울방학을 위수와 함께했다. 온전히 함께한 시간은 그 겨울 끝자락이 마지막이었다. 창근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외수 혼자만의 그리움이 계속되었다.

1955년.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었다. 시간은 세월이라는 이름 아래 휩쓸려 갔다. 그 지나간 시간 안에, 아직 아이 소식이 없어 늘 불안함을 안고 있어야 했다. 밤이 길수록, 달이 시퍼렇게 밤을 밝힐수록 애가 타는 것은 위수였다.

봄, 꽃이 비가 되어 내려 세상을 어지럽게 하여도.
여름,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져 세상의 먼지를 벗겨내는 시원함을 선사해도.
가을, 온 산에 밤이 입을 쩍쩍 벌려도.
겨울, 소복하게 쌓인 눈이 환하게 삶을 밝혀도.

외수의 텅 빈 가슴을 보듬어 주지는 못했다. 홀로 누워 바라보는 천장은 긴긴밤을 더 길게 했다. 그렇게 위수가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때, 창근은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생이 되었다.

시어미니의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무섭기는 했어도 위수의 마음에 돌을 얹지는 않았다. 생기지 않는 아이는 위수에게 작은 조약돌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맷돌이 되어 앉았다.

남편은 여전히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고, 주말에 찾아왔지만 아이는 좀처럼 위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위수에게 생기지 않는 아이는 불안으로 담겨왔다.
완전히 얼지 못한 얼음을 밟으면 쩍쩍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는 그런 불안.
완전히 깨져 발목을 더럽히지는 못하지만, 언제 깨어질까 두려워 완전히 올라서지 못하는 얼음이 담고 있는 불안. 생기지 않은 아이는 그런 존재였다.

시어머니의 서슬이 퍼레졌다. 쪽진 머리에 한 가닥의 잔머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동백기름만큼의 빡빡함이 위수를 숨 막히게 했다. 시어머니에게는 틈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두고 종종 시어머니에게서는 이런 말들이 날아왔다.

'네가 애기를 잉태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데 어찌 그것 하나를 못 하노?'
'네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노?'
'시집와서 한 게 뭐고?'
'아이 낳아 기르는 게 그리 힘들더냐?'
'남은 잘만 낳는 아이 어찌 하나 낳지도 못하고 그라노?'
'남의 집 대 끊을 놓을 일이 있나?'
'사람이 뭔 일을 할라카몬 그 끝이 깨끗해야 나는데 니는......'

흐려진 말끝에 어떤 말이 올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았기에, 걸어가는 발자국에서조차 정갈함을 찾으려고 했다. 그어진 선처럼 걷지 않으면 마음에 잡것이 많아서라는 억지소리를 들어야 했기에 걸음을 흩트려지지 않게 했다. 마당에서 먼지라도 일어나는 날이면 호된 잔소리는 그 정도를 넘어섰기에 발소리조차 죽이며 살았다.

"저, 저, 먼지 일으키는 것 좀 보래. 흐릿한 기운이 달의 정기를 막아 애가 생기지 않는 기다. 내 그리 말을 해도 어찌 그리 귓등으로도 안 듣노."
"...................."

화살이 콱 박혀 꽂히는  날카로움에 무어라 답을 해야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한 죄인이었다. 그 오명 아래 그저 숙인 고개를 더 숙였고, 단정한 발걸음을 더 단속할 뿐이었다.

경상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유독 독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갱상도 시어매는 한 솥에 삶아도 한 맛이다.'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우스개로 한 소리가 위수에게는 현실로 돌아왔다.

시어머니는 그 말에 딱 맞게 모질었고, 독했다.

시간은 그럼에도, 그렇게도 갔다. 숨이 막힐 듯한 억지소리에도 가시 돋은 말에도 해는 떴고, 밤이면 달이 어김없이 찾아오듯 세월은 갔다.

어느 날,
어느 순간 새 생명이 찾아왔다. 아이 잉태를 바라던 시어머니가 아이를 가졌다. 점점 불러오던 배를 보고 아이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먹성이 늘고,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했던 시어머니는 몸속에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축복받아야 할 시어머니의 임신 소식에 와르르 무너진 것은 외수였다. 정지 바닥에서 아궁이를 때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투기를 하는 며느리가 될 것이었기에 숨어 타닥타닥 타는 장작에 울음을 섞여 보냈다. 장작과 함께 서러움도 함께 타버리기를 바랐던 외수였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던가.

죽음과 새 생명은 함께 찾아왔다. 시어머니의 배가 불러오던 때 시아버지는 막내딸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뱃속을 누비던 아이는 병환으로 누워 계시던 시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주고 가신 선물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다음 해 건강한 딸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날 때에 옆을 지킨 것은 위수였다. 물을 끓여 낸 것도, 탯줄을 잘라 낸 것도.

그리고, 막내딸은 가장 귀하고 안쓰러워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동생에 대한, 딸에 대한 온 가족의 아픔은 귀한 딸로 만들었다.
 
막냇동생의 존재는 창근에게도 부담이 되어, 지금껏 아이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던 창근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투박하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여? 어찌 생기질 않어."
"문제가 있으면 매달 월경을 하는가요. 별 시답지 않은 소리 다 듣겠....."
"그럼 생기질 않는 걸 누굴 탓해. 남들은 다들 낳고 기르는 것을."

그 말을 남기고 창근은 탁,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어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혼자만의 문젠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지. 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여. 참말로.

닫혀버린 문이 창근의 마음 같아서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안고 있는 아이가 칭얼대었지만, 이미 터져 버린 울음은 담을 수 없어 그날 아이와 함께 울어 버렸다.

외수가 아이를 낳은 것은 그 후로 한 해 하고도, 두 번 더 계절이 옷을 달리 했을 때였다. 그리고 첫째 딸을 시작으로 외수는 내리 5명의 딸을 낳았다. 아들 낳지 못한다는 오명이 또다시 외수를 돌돌 감싸 옥죄었지만, 오물오물 자신만을 바라보는 딸자식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외수가 막내 애기씨와 두 살 차이로 낳은 큰 딸은 자신의 고모에게 많은 것을 빼앗기는 삶을 살았다. 태어나면서부터는 부모를 나누어야 했고, 자라면서는 배움을, 연애를, 사랑을 삶의 그 모든 것을 온전하게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도 위수가 유독 큰딸에게 정을 많이 줬던 것은 당연했다. 생을 시작하면서부터 양보와 포기라는 단어를 먼저 배운 딸이었기에.


***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불뚝 성질을 냈다.

"할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맨날 당하고 살았나?"
"당하긴 뭘 당해."

나는 '포기'를 '당하다'로 표현하였다.

"엄마가 우리한테 맨날 공부 공부하더니 그게 다 할매 때문이네."
"머라카노. 가시나가, 뭐만 하면 할매 탓이제."
"엄마가 얼마나 우리한테 공부하라 하는지 아나?"
"공부하면 좋지. 머 니가 하는 게 있다고. 따박따박 말대꾸고."
"할매, 언니들이 얼마나 내를 잡는지 아나. 내 숨 막히거든."

엄마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우리에게 했었다. 그 뒤에는 꼭 배워야 한다. 남들보다 더, 그것이 안되면 남들만큼. 우리 형제는 자라면서 그 이야기를 수 만 번쯤 들었다. 그래서인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전교에서 놀던 언니들이었다.

그 덕에 나도 숨 막히는 생활을 해야 했다. 범생이 둘은 공부에 독했고, 그 독함은 나를 잡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책을 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언니들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할머니 탓이라고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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