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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랍 애미 라이프 Nov 14. 2023

1분 1초가 아까운 쌍둥이 엄마의 글쓰기 고군분투

분초사회에서 살아남기

"대단하세요. 저는 애 하나 보기에도 정신없는데 쌍둥이 키우면서 글도 쓰시다니..."


칭찬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신문에 연재 중인 글에 남겨주신 독자님의 댓글에 하늘로 붕- 뜬 기분입니다. 대단할 건더기도 없는 저의 하루를 들여다보며 어디 개미 똥만큼이라도 대단할 게 없을까 하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대단한 구석이 없음에 이내 풀이 죽어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졌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대단한 것을 만들어보자! 하며 다시 키보드 앞에 앉게 됩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사업을 하는 말 그대로 '슈퍼 울트라 맘'인 친구는 한 가지 집안일을 2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조언해 주었습니다.


설거지 20분, 요리 20분, 빨래 개기 20분 안에 완료.



이런 식으로 마음의 타이머를 늘 켜놓고 몸을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 조언을 듣고 몇 번이고 시도는 해보았지만 손이 느리고 바지런하지 못한 성격의 저는 압박감이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해 되려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  


그래서 동시에 두 가지를 하는 '멀티 플레이'로 진검승부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결과물의 퀄리티가 중요치 않은 자잘한 집안일  예를 들어 설거지나 빨래를 개면서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 큰 흐름이나 짜임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세세한 내용을 정하면 잊어버리기 쉬우니 한 문단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딱 한 문장 정도를 생각하고 틈틈이 메모해 놓습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을 위젯으로 만들어 놓고 클릭 한 번으로 접속해서 생각한 문장을 저장해 놓습니다. 이 기능이 특히 편리한 이유는 손이 바쁠 땐 음성 메시지로도 남겨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시간이 컨디션이 가장 좋아 글쓰기에 제격이지만 늘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하니 도시락을 싸면서 이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큰 흐름을 잡아두고 나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새벽에 해놓은 메모들이 이때 빛을 발하곤 합니다.


퇴고는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틈새시간이나 놀이터에서 놀리면서 혹은 픽업 시간에 차에서 기다리는 5~10분의 시간을 활용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런 짧은 시간에 주로 숏폼 영상을 보며 보냈지만 요즘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이 잠깐의 시간을 활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종종 잡아낼 수 있으니 티끌 모아 티끌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차 쓸 시간이 없다고 조급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초등학생입니다. 즉, 어느 정도 엄마의 손을 타는 시기는 지났다는 이야기이지요. 아이들은 오전 8시에 등교를 해서 3시쯤 하교합니다. 어쨌거나 평일 7시간은 꿀 같은 자부타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유난히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를 거치고, 유난히 예민해서 세 살 때 비로소 통잠을 자기 시작한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동안은 저를 돌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예쁜 꼬까옷을 입은 아이들 뒤에서 말 그대로 '좀비'같은 몰골을 하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 취미 생활은커녕 아침 점심 저녁도 챙겨 먹지 못하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보통의 엄마들의 모습이지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보낸 시간이 지금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잠에 들면 옆에서 조용히 글이나 웹툰을 읽었습니다. 흐름이 끊기면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드라마와는 달리 호흡이 짧은 글이나 웹툰은 그때에 읽기에 딱 좋았습니다. '아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시간이 생기면 이런 걸 해보고 싶어.' 하며 수없이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작은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얼마 전, 터키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난민들에 관한 책을 집필하다가 둘째의 출산으로 전면 중단하게 된 친구를 만났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빠르다 보니 그렇게 한 번 손을 놓게 되면 지금까지 쓴 글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이지요. 그러나 그녀의 얼굴엔 그 어떤 아쉬움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을 틈새조차 없이 산 사람의 인생의 진하기를 감히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브런치 상위권에 있는 글을 보면 대다수가 그렇게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진짜'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만의 소재탱크에 소재를 채우고 있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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