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예라 May 26. 2024

불안이 긍정을 만났을 때

계획형 인간의 걱정 근심 탈출하는 법 


나는 일상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한 가지 일이 완료될 때마다, 체크박스에 체크를 하며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계획이 주는 안정성에서 벗어난 갑작스러운 변화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 꾸준함이나 성실함 가운데 평안을 누리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이벤트들로 가득한 세상이 버거울 때가 있다. 이러한 성향 탓에 나는 불안을 자주 느꼈고, 거기에 옵션으로 따라오는 걱정과 근심도 달고 사는 편이었다. 매사에 준비하고, 기록하고, 만약을 대비해야 불안하지 않는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신경을 쓰고 작심을 하여 안정감을 벗어난 상황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에 기준을 '긍정하기'에 놓고 사물,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라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로 '계획'했으니까 그냥 하기로 한 것일 뿐. 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편안해지며 없던 융통성이 생겨났다.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마음의 나침반을 '긍정'으로 놓고 걸어가자 생긴 심리적 변화였다. 오늘 아침,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카카오 맵에서 알려준 시간보다 1분이나 일찍 버스가 왔고, 버스 기사님은 열심히 뛰어 쫓아가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버스는 빨간색 광역버스였는데, 배차간격이 넓었다. 한번 놓치면 2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이 지역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강남으로 가는 대중교통의 다른 노선을 알아놓지 못한 상태였다. 


'괜찮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해. 다시 길을 검색해 보자.' 


그러자 전혀 새로운 노선이긴 하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버스가 1분 후에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러니까 좀 전에 왜 커피는 마셔서 버스를 놓쳤을까, 왜 이 버스는 카카오 맵이 알려준 시간보다 빨리 지나가버린 것인가, 왜 나는 미리미리 나와서 기다리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며 후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급해질 틈 없이, 두뇌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고, 나는 재빠르게 실행에 옮겼으며, 감사하게도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긍정의 효과였다. 


또 하나, 일을 일로 여기지 않고, 재미로 여기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하고, 다음 주에 있을 사업 계획 발표 준비도 좀 해야 하고, 아들의 밀린 유치원 숙제도 봐줘야 한다. '일요일은 짜파게티!'라는 아주 오래전 CF 광고의 카피처럼 어쩐지 아이들 입맛에 맞는 특별 요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중압감도 있다. 이 모든 일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기에 남편과 나눠서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회사 에어컨 센바람을 뒤통수에 하루 종일 맞은 탓에 그만 감기에 걸렸다.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 주말인데, 내내 기침을 하는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하려니 더 힘이 더 들었다. 하지만, 오늘의 약속,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기억했다. 그리고 얼마 전 도서에서 읽은 구절을 생각해 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의 말이었다. 


'지금 하는 일을 재미로 여기면, 당신의 인생은 천국일 것이다. 반면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의무로 여긴다면 당신의 인생은 지옥일 것이다.'


그의 말은 전혀 새롭지 않다. 약간은 뻔하게 느껴지는 클리셰였다. 그래도 미국의 대단한 부자가 했다는 말이니 한번 믿고 따르기로 했다. 오늘 오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재미로 여기기로 했다. 정말 천국처럼 여겨질지 시험해 볼까? 그의 말에 따라 요리는 '요리 놀이', '청소는 '청소 놀이', 남편 간호는 '병원놀이'쯤을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긴장도가 내려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일을 했고, 아들과 함께 '으랏차차 아이쿠 댄스(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를 보며 열심히 율동을 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호박 부침개와 유부초밥과 쫄면을 만들 예정이다. 한번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굳이 지옥으로 만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예기치 않은 변화를 불안해하는 나에게, 긍정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이 버스 다음에는 또 다른 버스가 온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과제를 '놀이'쯤으로 가볍게 생각해 보세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당신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자신을 믿어주세요. 



사진: Unsplash의 Katrina Wright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