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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Sep 21. 2022

두피 클리닉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남달라요.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다가 왠지 머리숱이 많이 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짜 그런 건지,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부쩍 머리카락도 얇아지고 윤기가 없어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샴푸를 바꾸었는데, 그것이 나의 모발과 잘 맞지 않아서라는 추측이 들었다. 사는 게 바쁘다고 내 소중한 머리카락에 신경을 별로 쓰고 살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의 필요에 대해서는 아까움이 없어, 바디샴푸 하나를 고를 때에도 깐깐하게 성분 따져가며 아이 피부에 최대한 자극이 적은 것으로 고른다. 그러면서 나의 샴푸에 대해서는 일단 그 기능만 제대로 갖추고 무엇보다, 가격이 적절하면 고민 없이 곧장 구매했다. 한마디로, 성의가 부족했다. 내가 없으면 온 우주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까닭이다.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했다는 증거로, 오랜만에 미용실에서 헤어 클리닉을 받기로 했다.


오후 1시 30분으로 단골 미용실, 나의 전담 미용사에게 두피를 관리받기 위해 '헤어 클리닉'을 예약했다. 그마저도 미용실에 가기 전에는 살짝 갈등을 했다. 집안일을 아직 다 하지 못하기도 했고, 전날, 교수님을 뵈러 서울까지 다녀오느라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용실 예약도 중요한 약속이니까. 지키는 것이 당연했다. 속도를 내어 집안일을 얼른 마치고, 미용실로 향했다. 가운을 입고, 미용실 의자에 앉아 환한 조명 아래 커다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피곤이 가득해 쌍꺼풀이 더욱 짙어져 퀭한 눈의 짠한 내가 보였다. 환한 미용실 조명 아래 오늘따라 내 머리카락은 어찌나 푸석푸석해 보이던지. 미용사 정성껏 나의 머리를 빗겨주고, 꼬리빗으로 모발을 나눈 후에 하얀색 풍부한 크림으로 된 헤어 제품을 정성껏 발라주었다. 그리고 이름모를 어느 투명한 액체 스프레이를 모발 전체에 골고루 뿌려주고는 10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순종적인 목소리로 "네. 선생님만 믿어요." 하면서 맑게 웃었다. 


얌전하게 10분을 기다리면서 옆에 다른 미용사와 손님의 이야기도 엿듣고, 음악도 듣고, 혹시 어린이집에서 아이 데려가라는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신경도 썼다. 정확히 10분 후에 미용사는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다른 때보다 정성껏, 오래, 그리고 시원하게 두피 마사지를 해주었다. 아침부터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피로가 샴푸와 함께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샴푸 후에는 머리카락에 수분을 공급해 주기 위한 기계에 연결된 헤어 캡을 쓰고 10분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드라이어로 바짝 말린 후, 멋지게 헤어 스타일링을 해주는 것으로 한 시간에 걸친 두피클리닉은 끝이 났다.


다시 거울을 보니, 아까 그 초췌한 눈과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가졌던 나는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윤기가 흐르며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에 어느덧 총기가 가득해진 내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침나절부터 살짝살짝 나를 신경 쓰이게 하던 두통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역시, 시간과 돈의 적절한 투자는 만족감을 남긴다. 나의 머리가 원래 이렇게 부드럽고 찰랑거렸던가.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남다르다면서, 미용사에게 감탄과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는 기분 좋게 샴푸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달에도 한번 시술을 받으면 효과적으로 모발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용사의 말에 격한 동의를 하며, "네! 하루 전에 예약하고 올게요." 했다. 참, 새로 산 고가의 샴푸에는 '엄마 샴푸'라고 라벨을 붙여놓고 오로지 나만 사용하는 이기심을 발휘할 생각이다. 40대 이후의 머리카락 한올은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니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며 수고한 나를 관찰하며, 머리카락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면, 푸석푸석 해졌다면 영양을 주고, 수분을 공급해주는 전문가를 찾아가자. 그리고 지갑을 열어 카드를 긁으며 나를 위한 보상을 해주는 것에 인색하지 말기로 하자. 정성껏 사랑해 주도록 하자. 그래야 더욱 기분 좋게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빨래를 개켜 옷장에 넣어주고, 맛있는 요리해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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