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재일기] 2026.4.21.
사라진 110킬로
임미옥
연이틀 묵은 옷들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간단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옷은 끝없이 나왔고, 동네 헌옷 수거함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을 금세 넘었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가게'에 내놓기에도 너무 오래된 옷들이었다.
검색 끝에 헌옷을 수거하는 업체를 찾았다. 옷, 신발, 가방 등을 20킬로 이상이면 직접 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봉지에 나눠 담아 놓으라는 말에 집안의 큰 쇼핑백들을 죄다 꺼내 옷을 채워 넣었다.
결국 헌옷 열다섯 봉지를 꼭꼭 눌러 묶어 대문 앞에 내놓았다. 업체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온다는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이상해서 나가 보니 대문 입구가 말끔했다. 가득 쌓여 있던 헌옷 보따리들을 어느 틈에 와서 실어간 것이었다.
드디어 헌옷들이 치워진 것에 마음이 후련했다. 그런데 잠시 뒤 이런 메시지가 날아왔다.
"110키로 33,000원입니다. 계좌 남겨주시면 입금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옷값이라기에는 너무 적고, 정리한 수고에 대한 대가라기에도 적은 액수였다. 그런데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버린 옷의 무게가 110킬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그 엄청난 무게를 방안에 쌓아두고 지냈다니,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이제 그 무게를 날려 보냈으니 방도, 그 방에서 지내던 마음도 그만큼은 가벼워졌을 것 같았다.
옷은 오래전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섰고, 멋을 부리는 단계마저 지나 어느새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물건이 되어버린 듯하다. 예쁜 것들은 쉽게 버려지지 않고, 버려지지 못한 것들은 어느새 삶의 자리를 점령한다. 그러다 마침내 사람은 그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짓눌린 채 살아가게 된다.
종종 쇼핑 중독의 괴로움을 털어놓는 이들을 보게 된다. 사는 동안만 잠시 채워지는 듯하지만, 가격표도 떼지 못한 옷들은 옷장 속에 쌓여갈 뿐이다. 공허는 곧 되돌아오고, 사람은 다시 새로운 것을 사들이며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러다 어느 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정리가 시작된다.
그 대가는 33,000원이 아니라, 비로소 가벼워진 삶이었다. 33,000원보다, 사라진 110킬로가 더 또렷했다.
우리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쌓아둔 무게를 내려놓는 것이다. 비워낸 자리에서 비로소 삶이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