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끝까지 붙잡는가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6.3.29.

무엇을 끝까지 붙잡는가


어젯밤 꿈에 내 강의실의 강단을 권위 있는 다른 교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물러나 휴게실에 앉았다. 잠시 뒤 학생들이 내 곁으로 몰려와 그 교수의 강의가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나는 그만두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교수가 먼저 그만두게 된다.


장면은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교수이자 시인이며 정치인을 닮은 한 여성을 둘러싸고 그녀의 말과 태도를 찬탄한다. 그녀는 세련되고 완벽해 보였다. 나는 그 옆에서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가지고 있던 동전을 털어 버스비를 주고 조용히 물러난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외제차 껍데기를 벗겨낸다. 화려해 보이던 차는 작고 초라한 딱정벌레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급격히 초라해진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낯설다기보다 낯익은 느낌이 더 컸다. 어디선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랑을 잘 믿지 않게 되었고, 아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그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순수한 마음이나 열정은 어리석은 것으로 취급받는다. 대신 계산이 빠른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받는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그 생각 속에 오래 머물다 보니, 내 마음 어딘가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어젯밤의 꿈에서처럼 나는 늘 한 발 물러나 있었고, 더 나아 보이는 쪽을 조용히 내어주고 있었으며, 그 자리를 스스로 비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사랑은 오래 가지 않는 것 같았고, 기대는 대개 어긋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여기는 편이 덜 아팠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바삭해지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채, 어제 두 편의 인간극장 이야기를 이어 보았다.


한 편은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사실을 17년 만에 알게 된 가족의 이야기였다. 서로의 아이를 아무 의심 없이 키워온 두 집은 아들의 희귀병을 계기로 뒤늦게 진실을 마주한다. 그 뒤로 두 가족은 오랜 시간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관계를 이어가고, 한 어머니는 자신이 키워온 아이와 뒤늦게 만난 아이를 모두 아들로 품겠다는 선택 앞에 선다.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는 끝내 두 아이를 놓지 않는다.


또 다른 한 편은 장애를 안고 태어나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입양됐던 한 여성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였다. 평생을 딸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키워준 부모 곁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어느 날, 자신의 시작이 궁금해졌고 결국 친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주한 자리에서, 딸은 낳은 엄마와 길러준 엄마가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두 이야기 모두 처음부터 온전한 삶은 아니었다. 어긋난 자리에서 시작되었고, 조건도 결코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놓지 않았다. 떠나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 앞에서 오래 멈추어 있었다. 감동이라기보다,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숨이 잠시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 내가 이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늘 알고 있다고 여겨왔다. 사람은 돌아서기도 하고, 사랑은 오래가지 않으며, 기대는 자주 빗나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사랑을 덜 믿는 쪽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 사람들은 내가 물러난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계산하지도 않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따뜻해지기보다 잠시 멈칫했다. "저런 사랑도 있구나"가 아니라, "나는 저 자리에 서본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이 먼저 올라왔다.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끝까지 붙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또 나는, 그렇게 붙들려 본 적이 있었을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사랑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 안에는 고통이 있고, 손해가 있고, 오래 견디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 마음속 아직 끝나지 않은 어떤 자리를 마주한 것 같았다.


완전히 떠나온 줄 알았던 자리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겪어온 방식이 너무 좁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이 옮겨가면서 질문도 달라졌다. 내 이야기가 부족한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로.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감정 하나,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는 생각 하나, 아무도 읽지 않아도 적어두는 문장 하나. 그런 것들이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이 완벽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끝까지 놓지 않기 때문에 이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방향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관계,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를 줄이는 방식, 어차피 떠날 것이라 미리 거리를 두는 습관에서 조금씩 물러나 보려고 한다.


대신,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은 자리, 무너지지 않는 연결을 택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끝까지 소중하게 여겨보려고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먼저 그것을 버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는 쪽보다, 사랑할 수 있는 쪽에 조금 더 가까이 서보고 싶다. 그게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끝까지 붙들고 있는 마음 하나, 흘려보내지 않은 감정 하나, 그리고 이렇게 남겨두는 문장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묻지 않으려고 한다.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지. 다만, 내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조용히 붙들고 가보려고 한다.


♤ OdelierJazz, 「Quiet Echoes」 (유튜브 영상 화면)

– 말없이 곁을 지키는 것들이 하루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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