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하게들 사십시다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5.3.31.

촉촉하게들 사십시다


글쓰기 참여자들과 뒤풀이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화제는 커피로 옮겨갔다.


누군가는 커피는 음악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왠지 불완전하게 느껴진다고.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커피가 빠진 인생은 허전하다고 했고, 언젠가부터 커피를 멀리하는 친구들이 늘어간다고 덧붙였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모여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없이 글이나 그림을 끄적이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한창때는 하루 서너 잔의 블랙 커피를 마셔도 끄떡없던 나 역시 한동안 커피를 끊고 지냈다. 코로나 이후 위장이 상해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요즘은 하루 한 잔 정도, 부드러운 카푸치노나 라떼를 천천히 마신다.


그 한 잔이 좋다. 속을 덜 자극하면서도, 하루를 부드럽게 열어준다.


얼마 전 큰시누님께서 심장에 이상이 생겨 커피를 끊으라는 말을 들으셨을 때, 이제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하셨다.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젊었을 적, 곧 죽을 것 같은 날에도 아침 커피를 마시는 낙에 일어나 움직였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꼭 거창한 무엇일 필요는 없다는 것, 하루를 다시 붙들게 하는 것은 때로는 손안의 작은 온기 하나라는 것을. 삶은 결국 무엇으로 버티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지난 해 강릉에서 작은 머그컵 하나를 사 왔다. 봄빛을 닮은 연분홍. 손에 쥐었을 때 딱 맞는 온기.


요즘은 그 컵에 주로 라떼를 타 마신다. 연노랑, 분홍, 고동색—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고르는 작은 선택들. 그 사소한 취향이 하루의 결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오늘은 분홍 컵에 돌체 라떼를 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번진다. 그 순간, 마음도 함께 풀어진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읽다가 "딱딱하게 말라버린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문장을 만났다.


요즘 세상은 지나치게 말라 있다. 말은 거칠어지고, 마음은 쉽게 굳어 간다. 서로를 향한 언어는 점점 날이 서고, 그 안에서 사람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며칠 전, 한 사람과 생각을 나누다 말을 접어 버렸다. 이해하려던 말은 금세 대립이 되었고, 대화는 싸움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다 잘 살고 싶어서 이토록 애쓰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메말라야 하는가.


촉촉하고 부드럽게 살 일이다.


형해만 남은 생각보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온기와 촉촉함이다.


오늘도 나는 한 잔의 커피로 하루를 적신다. 너무 바스러지지 않도록 촉촉하게, 내 마음이 아직 부드럽게 남아 있도록.

♤ 챗지피티, 「온기를 머금은 얼굴」, 2026.

– 한 잔의 온기로 스스로를 적시는 시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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