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재일기] 2026.3.26.
버리는 기쁨
언젠가부터 매일 한 가지씩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오래된 구두 한 무더기를 버렸다. 한때 멋을 부리며 즐겨 신던 하이힐들이었다. 십 년 가까이 신지 않으면서도 미련 때문에 간직해 두고 있던 것들이었다.
신발장을 뒤져 손에 닿는 대로 쓰레기봉지에 담아 묶어 버리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두 번 다시 신지 않을 신발들을 왜 여태 붙잡고 있었을까. 세월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데, 나는 풍경 좋은 어느 강기슭에 머무르려는 물처럼 서성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신발들을 신고 또각거리며 세상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그때처럼 넓게 닿고 높이 올라가려 하기보다, 조금 더 낮고 깊이 흐르며 단순하게 살고 싶다.
십 년 사이 세상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지만, 내 마음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에 점점 허무 쪽으로 기운다. 수정체를 갈아끼운 뒤, 눈가와 목의 주름이 한층 또렷해졌다.
낡은 구두를 버리고 나니, 그동안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이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보이는 듯하다. 성큼 건너뛴 세월이 이제는 조용히 등을 밀며, 놓아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나면 마음 한켠이 맑아진다.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정돈되었다는 기쁨이 고요하게 차오른다. 젊은 날에는 사서 채우는 일이 기쁨이었다면, 이제는 비우는 일이 그만한 평온을 준다.
소멸을 향해 가는 인생에 끝내 붙잡을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발사체처럼, 아직은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책이다. 학창시절에도 그랬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책을 사 모으는 일은 큰 기쁨이었다. 비어 있던 서가는 해마다 조금씩 채워졌고, 어느덧 가득 들어찼다. 그것을 바라보면 마치 내 정신이 함께 채워진 듯한 묘한 만족감이 든다.
눈이 나빠진 뒤로는 사두고 읽지 못한 책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모아두고 있는 것은, 지식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려놓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쯤 이 마음마저 버릴 수 있을까. 그리하여 채웠다는 만족감보다 치웠다는 기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한 무더기의 신발을 버리고, 언젠가 맨 몸으로 돌아갈 내 영혼의 처소를 떠올렸다.
♤ OdelierJazz, 「Afternoon Radio」 (유튜브 영상 화면)
–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낮고 깊어진 하루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