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꽃소식

by 혜윰의 해밀

[심오재일기] 2022.3.15.

시절인연, 꽃소식

“봄은 여인의 옷자락에서부터 온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전염병이 오래 이어지며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자 거리의 색깔도 쉽사리 밝아지지 않는다. 여인들의 옷자락도 여전히 겨울빛을 벗지 못한 채 우중충하다.

그래도 봄은 온다. 요즘의 봄은 어쩌면 스마트폰 속에서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이 꽃소식을 보내오고, 페이스북에서는 서로 다투듯 꽃사진을 올린다. 매화와 산수유, 동백이 작은 화면 안에서 먼저 피어난다.

그 꽃들도 좋지만, 내게 봄이면 늘 먼저 떠오르는 꽃은 수선화다. 때로는 성급히 봄을 맞고 싶은 마음에 시장에서 수선화 화분을 몇 개 사 오기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트 매대에 수선화가 가득하다. 그중 하나를 모셔다가 찻장 위에 놓는다.

한 점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에 냉철하고 영특함이 둘러 있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푸른 바다 파란 하늘 한 송이 환한 얼굴
신선의 인연 그득하여 끝내 아낌이 없네
호미 끝으로 예사로이 베어 던져진 너를
밝은 창 맑은 책상 사이에 두고 공양하노라
– 김정희, 「수선화(水仙花)」

수선화를 보면 언제나 추사가 떠오른다. 그 꽃을 유난히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그 꽃에 얽힌 정약용과의 일화도 함께 떠오른다.

연경을 다녀오는 사신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수선화를 얻어 고려청자 화분에 심어, 존경하던 정약용 선생에게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다산은 그 꽃을 보고 시를 지었고, 그 향기는 훗날 추사의 시에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다산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벗들과 함께 ‘죽란시사’를 만들었다. 그 규약이 참으로 아름답다.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또 한 번 모인다. 한여름 참외가 익을 때도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서쪽 연못에 모여 연꽃을 본다. 국화가 피면 다시 모이고, 겨울 큰 눈이 내리면 또 한 번 모인다. 그리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다시 모여 술을 나누고 시를 읊는다.

꽃을 따라 모이고, 계절을 따라 흩어지는 시 모임. 생각할수록 참으로 풍류로운 약속이다.

나도 한때 가톨릭상담심리학회 동료들과 시 모임을 만든 적이 있다. 이름은 ‘조각보’. 때로는 ‘소심회’라고도 불렀다. 상처 난 마음들을 시로 이어 붙여 조각보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는 뜻이었다.

한동안 그 모임은 참 좋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구름처럼 모였다가 구름처럼 흩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별것 아닌 오해들이 쌓여 그렇게 된 것 같다. 내가 주창자였으니 조금 더 잘 꾸려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스스로 부족하여 그러지 못했다.

한번 흩어진 구름은 다시 모이기 어렵고, 한번 끊어진 인연도 다시 잇기 쉽지 않다. 가톨릭 신앙과 상담심리, 시에 대한 사랑까지 공통점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찾기 어려운 모임이었다.

일기일회.

꽃은 피었는데 함께 볼 벗이 없으니 문득 섭섭하다. 그래도 요즘은 좋은 페친들이 있다. 꽃소식을 나누는 벗들이 화면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나는 혼자 꽃을 바라보고 시를 짓는다.

봄에 만난 인연은 여름이면 헤어지고, 여름까지 뜨거웠던 관계도 가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봄부터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인연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연이틀 내린 봄비에 잠자던 풀들이 저마다 푸른 손을 들고 나왔다. “저요, 저요.” 엄동의 위세에 눌려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것들이 이제야 세상 앞에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풀잎마다 이슬을 머금었다. 햇살이 스치자 그 이슬이 반짝인다. 금세 사라질 목숨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찬란하게 빛나겠다는 듯.

작지만 또랑또랑한 그 음성이 봄빛 속에서 맑게 울린다.

♤ 김정희, 「수선화」,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외.
– 차가운 계절 끝에서 홀로 향기를 밝히는 선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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